고구레 사진관 - 상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네오픽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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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 사진관,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자음과모음(네오픽션),
개정판 1쇄 발행: 2018년 9월 14일, 463쪽

 

미야베 미유키. 애칭, '미미 여사'의 <고구레 사진관>은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책이라 했다. 읽어본 적 없는 책이어서 기대가 됐고 곧장 서평단에 참여하겠다는 신청글을 올렸다. 대중의 호응이 좋다면 그에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싶었고 이전에 읽었던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와는 또 어떻게 다르게 전개될지도 궁금했다.

책을 다 읽고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왜 개정판이 나온다고 했을 때 이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는 뉘앙스로 홍보가 되었는지를. 한 마디로 (개인적인) 정의를 내린다면 '담담한 문체로 빚어내는 인간애'라는 말로 이 책을 정의하고자 한다. 부족한 정의이겠지만, 그녀의 책을 꼼꼼히 읽은 독자로서 참 사랑스러운 책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사랑스럽고, 정이 가고, 또 나이나 성별이 나와 다를지라도 일면 나와 비슷한 점이 있어 좋았다고. 상상 안에서 통통 튀며 숨을 쉬는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고. 다만 상(上)편과 하(下)편으로 나뉘어 있어, 그 다음 이야기를 연이어 읽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라고.

 


 

 

 

간략하게 <고구레 사진관>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우선 주인공인 '하나비시 에이이치'를 빼놓을 수 없다. 하나비시 가(家)의 장남으로 애칭 '하나짱'. 아버지(하나비시 히데오)와 어머니(하나비시 교코) 그리고 죽은 여동생(하나비시 후코)과 막내인 남동생(하나비시 히카루, 애칭 '피카짱')을 합해 총 다섯 가족이다(여동생의 영혼이 항상 함께 한다는 부모님의 생각을 존중해 이렇게 소개한다). 거의 가족과 다름 없이 그의 곁에 공기처럼 머무는 친구, 다나코 쓰토무(애칭 '덴코')와 데하루치 지하루(애칭 '탄빵')은 빼놓을 수 없는 감초라 하겠다.

주인공 '하나비시 에이이치'의 생각은 처음에는 약간은 무미건조하게 보이는데, 책을 몇 장 넘기며 읽다보면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금세 알 수 있다. 병에 걸려 지금은 세상에 없는 '후코'를 함께 한다고 여기는 부모님을 보며 혼란스러워 할 수 있는 동생 피카짱의 마음을 항상 살피려 하는 형이고, 부모님의 마음을 고려해 습관처럼 '뭐, 어쩔 수 없지.' 하며 수더분하게 따르는 아들이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저자의 전작들을 참고하면 추리 소설인가, 선입견(이라고 하면 좀 과한 표현인가도 생각한다마는)을 가지는 독자들이 있으리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고구레 사진관>은 읽는 이의 감정을 마구 헤저어 놓는 긴박감, 피가 낭자하게 흩어지고 누군가를 쫓거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쫓겨 달아나야만 하는 잔인함이나 공포 심리를 주된 정서로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독자들이 주인공 '하나비시 에이이치'가 친구들 혹은 부동산 사장님, 학교 선배 등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차분하게 그 감정선을 따라가게 만들고, '그 사진에는 왜 저런 표정이 담겨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한다. 불안감을 자극할 만한 '어둠' '심령사진' '귀신' 등의 단어는 나올지언정, 그것이 독자들의 공포심을 연달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자가 그 사진의 행적을 주인공과 함께 밟아가면서 쓸쓸한 (마음이거나 혹은 실체로서의) 방 안에서 옹그리고 앉아 있는 각 인물들의 팔다리를 풀게 하고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 안정을 찾게 한다. 그래서 책 속 인물과 읽는 이 모두가 단단히 걸어두었던 마음의 빗장을 풀게 하고, 내가 겪었던 감정, 혹은 겪지 못했지만 어떤 단어로 정의할 수 없던 감정에 대해 '아' 하고 소리 내어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소설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네가 혹시 피카짱한테 '형아, 달님은 왜 높은 데 올라가면 작아져?'라는 질문을 받으면 제대로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뜻이야. 모든 일이 마찬가지지."
형님의 책임감이라고 했다.
"의미를 모르겠다. 그럼 남동생이나 여동생이 있는 녀석은 모두 그렇다는 거야?
덴코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건 아니야. 하나짱은 특별한 예지, 안 그래? 피카짱은 너보다 훨씬 어려. 그 점이 다른 거야. 넌 피카짱이 철들면서 세상 온갖 일들에 '왜? 왜?' 질문을 던지게 된 후로 언제든 대답할 수 있게 준비하는 사람이 된 거라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대답할 수는 없더라도 언젠가 대답해줄 수 있게. 까맣게 모르는 거라도 왜 모르는지 대답할 수 있게."

/* 79쪽

 

 

 

그리고 하나비시 가(家)에 전(前) 고구레 사진관이었던 오래된 건물을 팔도록 중개했던 부동산의 사장(스도)과 여직원(가키모토)도 초반의 평면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나 이야기가 전개되면 될수록 점차 입체적인 캐릭터로 변모하는데, 그들의 캐릭터가 점점 매력 있게 보이기도 하고 또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납득이 되어서 (그러려고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눈길이 간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특히 그들의 심성, 그리고 심리 상황이 잘 드러나는데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든 이들에게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으리라는 생각. 아래는 대표적인 발췌 두어 가지.

 

 

"최근 일 년간 가키모토 씨를 보고 느낀 점인데……."
사장이 팔짱을 끼고 나지막이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그렇게 공격적인 건 사실은 두렵기 때문이야.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어떻게든 강하게 나가야지 안 그러면 금세 당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거야. 상처 받기 전에 먼저 상처를 주려는 거지. 그런 인간관계밖에 모르고 산 것 같아, 지금껏."
… 미스 가키모토는 살아 있는 인간을 두려워한다. 탄빵은 유령을 두려워한다. 그렇지만 탄빵도 살아 있는 인간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 경험이 분명 있을 것이다. 예전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으니까.
:
"중요한 건 평범하게 대하는 거야, 평범하게."
어쩌면 이 스도 사장과 부인은 굉장히 훌륭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인(大人)이라고 하던가.

/* 319~320쪽

 

 

"당신 말이지, 자각하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외투 자락 밑으로 피카랑 비슷할 정도로 가녀린 손이 엿보였다. 뼈만 앙상한 희고 가는 손가락은 이쪽에서 잡아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잡아서는 안 될 뭔가를 잡으러 가버릴 것처럼 보였다.
"스도 사장님과 사모님 댁의 툇마루에 앉아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
"당신이 툇마루에 앉아 있는 모습이 사장님이랑 사모님에게도 보인단 말이지."
그리고 툇마루는 가족이 사는 장소는 아니라 해도 역시 집의 일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까 당신이 거기서 드러눕거나 하면 사장님도 사모님도 걱정하잖아."
:
"설교 좀 하시네, 하나비시 댁 아들."
:
다음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난 이제 전차를 탈 거야."
"어디 가는데?"
"어디긴 어디야, 집이지. 일 끝났으니까."

/* 458~460쪽

 

 

 

누군가의 앞에서 마구마구 위로의 말을 쏟아낸다고 해도, 그 앞에서 왈칵 눈물을 쏟는다고 해도 그(녀)에게는 가닿지 않는 진심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무뚝뚝하게 들리기도 하고 툭하고 지나가듯 던진 말 한마디에 닿는 진심도 있다. 이 책은 그런 담담함을 담고 있다. 잔잔하게 흘러 가는 시간 속에서 각 인물들의 진심이 서투르게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뭐랄까, 참... 평화로운 마음이 든다. 추리 소설의 전통적인 맥락과 궤를 같이 하고 있지는 않으나 또 얼핏 비슷한 맥락을 가져 가고 있는 이 책의 흐름이 묘한 나른함과 따뜻함을 담고 있기에 살아가며 이 책이 문득문득 생각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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