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지나가다 "삶이란 결국, 집과 집을 떠도는 과정이 아닐까." p.44 이번 여름은 유난히 습하고 덥고 비가 많이 내린다. 예측 할 수 없는 계절을 지나가며 이 책과 함께 했다. "비가 새서 눅눅하게 젖어 갈 수밖에 없는 건 낡은 천장만이 아니다. 삶에도 누수의 흔적은 남기 마련이고, 그 흔적은 좀처럼 복원되지 않는다. 아니, 절대로 복원될 수 없는 흔적도 있다." p.135 아버지의 가구점 사업 실패로 신용불량자가 되버린 수호는 훔친 지갑에서 발견한 모르는 이의 신분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저 평범한 결혼생활을 꿈꿨던 민은 파혼 후 우연히 부동산에서 일을 하게 되고 일을 하면서 의뢰가 들어온 집에 30분씩 몰래 들어가 그 집에 사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한 없이 위태롭고 조마조마 하기도 하며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느낀 그 기분이 그들의 삶이었겠지. 마치 비가 오기전 습기를 한껏 먹은 어두운 밤이 생각나고, 조금은 차분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두 사람에게 우연한 교집합이 되어 마주치게 되는 수호아버지의 가구점. 습기를 머금은 공간과 가구, 나무의 냄새가 느껴지기도 했다. 보이지 않지만 그 곳의 무거운 공기, 두 사람의 공간. 나에게 여름은 언제나 버겁고 힘들다. 이번 여름은 특히 더 고약하게 느껴진다. 그들도 이 여름을 천천히 지나가고 있겠지. "바람이 선선했다. 바람이 가는 곳은 여름의 끝일 터였다. 이제 여름은 설산이나 사막보다 더 먼 곳처럼 느껴졌다." p.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