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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 ㅣ 까치글방 170
토머스 S.쿤 지음, 김명자 옮김 / 까치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토마스 쿤이 60년대에 발표한, 문제의 저작이 나온지도 벌써 반세기가 다 되어간다. 번역자가 소개했듯이 패러다임의 의미는 정확히 규정되지도 않았고 설명과정이 분명하지도 않은 문제제기의 성격이 강한 저작이라고 해야 타당할 듯 하다.그럼에도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학의 발전이 점진적인 역사적 과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혁명적인 즉 세계관의 변화를 수반하는 변동 내지 전환에 의해서 이룩되었다는 설명은 그 자체가 혁신적이다.
그렇다면 쿤의 지적은 타당한 것일까. 과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나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인류의 기념비적 발견이 과학의 위기와 그에 따른 혁명적 전환을 통해서 도출된 성과들이라고 판명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독자로서 감히 쿤의 견해는 일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코페르니쿠스, 뉴턴, 다윈, 아인쉬타인 등 과학자들의 성과물들은 단지 그 시대에 첨예하게 문제시되었고 경쟁적인 관계속에서 보다 뛰어난 문제해결자들에 의해서 해소된 결과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한 증거는 그 시대 저작들을 통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발전의 기저는 어느 뛰어난 천재들에 의한 혁명적 사고전환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시대적 상황의 여건에 달려있다고 감히 결론내리고 싶다. 그 시대의 교육환경이나 동기부여, 자유로운 연구환경 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사실은 현재 미국과 다른 국가들을 비교해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20세기 이전과 20세기의 발전 속도와 그 수량을 비교해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쿤의 발상은 다분히 소수의 천재에 의존하려는 귀족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20세기와 21세기에 이룩하고 있는 발전들이 과연 소수의 천재들 몫일까. 오히려 그 대부분은 이름없는 수많은 공학도들, 모험적인 벤처 도전자들 등의 몫은 아닐까.쿤의 패러다임 제시는 그 의미하는 바가 의미심장하더라도 다수의 시대적 기여자들을 놓치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