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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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언니가 또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를 며칠 전에 들었다. 친척들이 모이면 이제 초등학생부터 돌도 안 지난 간난아기, 그리고 태아까지 그 자리에 있는 셈이다. 아기를 보면 신기하면서도 솔직히 모르겠다. 대체 왜 사촌오빠들은 저렇게 애들을 가지는 걸까? 과연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 기른다는 게 어떤 의미인 걸까. 어느 소설 속에서 사망한 여주인공의 태중에 태아가 있었다. 내 친구는 그 소설을 읽고 그걸 가슴 아파 했다. 그런데 나는 태아가 있었다는 것조차 바로 잊어버렸는데 말이다.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일까? 

 

다카노 가즈아키의 『K·N의 비극』은 어린 두 소녀가 고양이의 출산을 지켜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나미는 엄마처럼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싸락눈이 흩날리는 이날 밤, 아마도 가나미 자신은 엄마가 될 자격을 얻었으리라._15쪽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고 나고도 한참 후, 결국 가나미는 엄마가 될 기회를 갖게 된다. 슈헤이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 즐거운 한 때의 결과로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새 맨션을 마련하는 데 너무 큰 비용이 들어갔다.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원하는대로 흡족하게 키울 수 없는 상황이라 나쓰키 부부는 중절을 결심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질문과 함께 불청객이 찾아온다. 가나미는 중절 수술 도중에 발작을 일으키고, 그 안에 누군가가 들어선다. 그 누군가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다. 가나미는 귀신에 씐 걸까, 아니면 그저 정신병에 걸린 걸까? 가나미가 겪는 빙의 현상의 원인은 대체 뭘까.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가나미(인지 아닌지)의 모습이 긴장감을 자아낸다. 의사인 이소가이가 절대 사령현상이 아니라고 계속 이야기하는데도, 사령현상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일어난다. 보통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을 알고, 할 수 없을 짓을 한다. 과연 이 현상은 어떻게 규정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 속에서, 가나미는 공포스러운 존재가 된다. 

 

그러나 단순하게 공포의 대상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쪽이 되든 그녀는 새끼를 보호하려는 의도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주로 슈헤이와 이소가이라는 남성들의 시점에서 처리된다.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가나미의 상태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 임신에 대한 여성들의 태도이다. 임신을 간절히 바라다가 자살기도 까지 하는 여인, 아이를 지우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소녀. 여성에게 잉태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기에 쉽게 중절을 이야기 하고 상황을 악화시킨다.


소설에서는 모성을 아주 긍정적으로, 경이감을 가지고 그려낸다. 글쎄, 어쩌면 이건 남성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어머니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매체가 그려내는 일종의 이미지. 일부 여성은 여기 나오는 사람들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 속 여주인공의 태아를 신경 쓰던 내 친구처럼 말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낙태에 대해 감정적 호소를 하고 있다. 아이를 죽여버리는 건 아기만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폭력이라고. 소설에서도 언급되듯이 낙태는 많은 이들이 하고 있는 선택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소설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은 문제의 단면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낙태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소재로 소비되지만 작품 내에서 깊이있는 고민은 부족하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둥 불륜이라는 둥 쾌락 추구라는 둥 그럴싸하게 말하는 매스컴이나 문화인들에게 호도되지 말 것. 섹스를 하면 아기가 생기는 거야. 울게 되는 건 여자고. 남자는 도망쳐 버리지. 연애라는 건 아기를 낳기 위한 도화선이라고."_366쪽

 

 

소설의 진행이 흥미진진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야기는스릴감 있게 전개되며 몰입도를 높였다. 호러와 스릴러의 요소를 갖추고 있어 눈을 떼기 힘들었다. 또한 슈헤이는 이입하기 쉬운 캐릭터였고, 가나미같은 다른 인물들의 행동이 아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은 K.N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여전히 아이를 가진다는 건 잘 모를 영역이지만,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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