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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 - 2012 제3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2년 10월
평점 :
최민석의 『능력자』는.... 그러니까. 음. 뭐라고 해야할까. 말을 골라내기 힘들다. 뭔가가 머릿속에서 맴맴 맴도는데 정리가 되지 않는다. 맴맴거리는 매미 언어를 번역해줄 능력자가 필요하다.
그래. 그러니까 주인공 공평수 말이다.
소설가와 챔피언
어두컴컴한 체육관의 조명 아래 링 위에 서 있는 초로의 남자가 흘리는 땀방울 하나가 클로즈업 된다. 그리고 배경음악으로는 장중한 매미소리가 깔리고.... 아, 이게 아닌가. 그러면.... 좁디좁은 단칸방에서 한 젊은이가 글을 쓰고 있다. 통장에 남은 잔액은 3320원.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겠다며 열심히 글을 쓰는데... 소희가 옷을 벗는다. .....이것도 아닌가?
서술자인 남루한은 실패한 소설가이다. 등단은 했으나 변변한 작품도 없고 책도 안 나오고. 그런데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 그냥 가난한 소설가. 돈이 필요하기에 공평수의 자서전을 쓰기로 했다. 공평수로 말할 것 같으면 과거의 영광은 내버리고 실패자로 살아가고 있는 옛 복싱 챔피언이다. 지금은 그저 신성한 매미의 기운을 받아 초능력을 쓴다고 말하는 미치광이, 인생의 패배자일 뿐이다. 그 공평수의 인생.
-초능력자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_187쪽
-이젠 안 그럴 거야.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거라고.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할 거야.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건 초능력이라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초능력이란 말야 초능력!_189쪽
거칠거칠한 그의 인생
그러니까 뭐라고 말해야할 지 모르겠다. 어쩌면 정말 평범한, 단순한 이야기인데도 감동적이다. 심플한데 웃기다. 번역서에서는 맛볼 수 없을 한국어의 찰진 문장과 재기발랄한 입담이 여기에 있다. 비극을 희극으로 포장해내는 기술이 대단하다. 이 거칠거칠한 이야기를 읽는 동안 웃음과 한숨이 번갈아 나오며 나를 후려친다. 승리, 실패. 능력자.
헤드가 멋대로 추리해서 말하는 공평수의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세상을 비난한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을 좇고, 바라고, 초능력을 얻고 싶어한다. 그런데 내게는 없는 그 초능력이 정상일까. 우리가 바란다고 슈퍼맨이 될 수 있나. 실패와 승리는 결국 남이 아닌 내가 결정해야하지 않을까. 작가가 정신적 자위의 결과물이라고 내놓은 이 작품은 결국 독자들에게도 비슷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공평수가 그랬듯 승부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세상이 이겼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인정할 수 없는 승리는 진 시합이다. 세상이 패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목표한 수준에 도달한 경기는 이긴 경기고, 이긴 삶이다._220쪽
그런데, 아직 난 공평수처럼 자서전을 쓰지는 못하겠다. 그는 멋있었고, 영원한 챔피언이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나는 '세상의 판정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나의 자서전을 쓸 준비가 되지 못했다.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내가 나의 링 위에 올라갈 수 있게 된다면 그 때는 나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