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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달린 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지음,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김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판타지에 관련된 수업을 들었었다. 학생들이 환상적인 요소를 가진 작품에 대해 각자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호러에 관련된 작품들은 하나같이 모두 뱀파이어물들이었다. 그만큼 흡혈귀라는 요소는 판타지에서 뗄 수 없는 존재이고, 계속해서 소비되는 괴물이다. 그 흡혈귀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단연 드라큘라. 비록 드라큘라에 대해 발표한 학우는 없었지만, 그들이 발표했던 작품들이 드라큘라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흡혈귀에 대한 많은 설정이 여기서 만들어졌다고 하니까.

『주석달린 드라큘라』는 제목 그대로. 어마어마한 주석량을 지닌 주석달린 시리즈 중 하나. 『주석달린 셜록홈즈』의 주석 작업을 한 레슬링 S 클링거의 작업물이다. 주석달린 시리즈는 나 역시 좋아하는데, 원 텍스트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과 색다른 해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주석이 있건 없건 드라큘라의 전문을 제대로 읽어보는 것도 처음이다. 드라큘라 역시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데 내용은 다들 아는 이야기'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리라. 드라큘라 백작이 흡혈귀이고 그가 퇴치된다는 건 알지만 누가 어떻게 왜 드라큘라를 퇴치하는지는 몰랐다. 이번에 주석달린 드라큘라를 통해, 드라큘라 전문을 읽는 것은 물론이고 드라큘라에 대한 전문 이상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주석은 원문의 이해를 돕기 위한 지리적, 시대적, 역사적 배경 지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일기와 일기, 사건과 인물 사이에 있는 틈에서 새로운 해석을 해낸다. 드라큘라는 사건에 얽힌 인물들의 일기, 편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씩 오류가 나기도 하며, 자신을 변호하기도 한다. 이야기가 편지와 일기라는 방식으로 한 겹 덧 씌워졌기에 실제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다.
레슬리 S 클링거는 주석에서 이런 틈을 끊임없이 지적하며 드라큘라의 진실은 무엇일지 계속해서 묻는다. 주석이 없었을 때 내가 드라큘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주석이 어떻게 그들의 인상을 바꾸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만약 주석이 없었다면 등장인물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그들을 숭고한 신사숙녀로 봤을 것이다. 그런데 주석은 그런 이미지를 가차없이 깨부수며 그들의 태도를 지적한다. 어찌나 냉정하게 비판하고 지적하는지 주석 때문에 인물과 브람 스토커에게 동정이 갈 지경.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점을 통해 드라큘라는 하나의 단일한 텍스트를 넘어 다양한 서브텍스트를 품고 있는 이야기의 원천이 된다. 수많은 의문점 사이에서 가장 절절한 해답을 찾아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작업이다.
드라큘라, 흡혈귀 이야기의 가장 전형적이며 중요한 작품. 주석을 통해 작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직접 드라큘라를 만났을 때 이 이야기들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있을지도. 마늘과 성수와 십자가, 성체용 빵을 준비해야하는 건 확실히 적혀있음!
"일 년 전만 해도 우리 중 누가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소. 과학과 무신론을 숭상하고 눈에 보이는 사실만 받아들이는 이 19세기에 말이오. 우리는 우리 눈앞에서 입증된 사실조차도 코웃음치며 받아들이지 않았소. 하지만 흡혈귀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나 흡혈귀의 한계, 그자를 퇴치하는 방법이 같은 근거 하에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하오. 흡혈귀는 인간이 있는 곳에 항상 존재해 왔소."_4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