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 개정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다들 일상 속의 수수께끼라는 것을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내 지우개는 어디 갔을까. 왜 통장에 벌써 돈이 없을까. 뭐 이런 것들 말이다.  응? 이런 건 일상의 수수께끼라고 하기에는 좀 시시하지 않느냐고? 내게 있어 가장 미스터리한 일상은 저런 건데. 오늘만 해도 내 자가 사라져서 찾아다녔다. 항상 제자리에 없다니까. 범인은 분명히 집요정! 집요정이 몰래 내 물건 위치를 바꾸는 게 틀림 없다. .....내 기억력 문제지. 에라.




와카타케 나나미의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은 일상의 수수께끼를 이야기한다. 일상 속의 미스터리라는데, 내가 겪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애초에 '안경 어디 뒀더라'가 일상 최대의 미스터리인 나와는 당연히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는 소설 속에서 건설회사의 사내보 편집장으로 변신한다. 그녀의 소설은 설정상 아마추어 소설가의 작품으로 변한다. 틈틈이 썼던 소설은 어구의 통일도 안 되어 있고 틀린 부분도 있지만 아마추어 소설가의 작품이기에 문제가 안 된다. 게다가 그러려고 일부러 틀린 부분도 있다고 한다. 영리하다. 


다만 친구 중에 미스터리풍 이야기를 쓰는 녀석이 하나 있어. 왜 그런지 단편을 좋아하는데다가 제법 시건방진 문장을 쓰지. 다만 본인도 말하듯, 아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은 없어. 하지만 자기가 체험했거나 다른 사람한테 들은 이야기에 생각지도 못한 해섯을 부여하는 묘한 재능을 갖고 있거든. 그러니 미스터리풍이라 해도 될 것 같지 않나? 와카타케 군은 대학시절에 살인이 등장하지 않는 미스터리는 벤케이가 나오지 않는 간진초라고 했는데, 나이를 좀 먹었으니 지금쯤은 생각이 달라졌겠지._11쪽




미스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다


어쨌거나 사내보 편집장 나나미는 익명의 소설가에게서 사내보를 위한 단편소설을 받는다. 사나다 건설 컨설턴트의 사내보에는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총 열두 편의 소설이 연재된다. 선배의 주선으로 알게 된 작가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벚꽃놀이, 동네 야구, 발렌타인 데이, 사람 이름 맞추기 등 아주 소소한 미스터리들이다. 그냥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사건을 미스터리로 해석해내기도 하고, 때로는 진짜로 미스터리한 괴담 같은 것도 들려준다. 괴담은 왜 있냐고? 마지막에 나온다.


어쩌면 이 '나'도 꽤나 명탐정 기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건을 불러오는 사람 말이다. 아니면 사건을 직접 만드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건이라는 건 해석하기 나름일 테니까. '나'는 정말 시시한 이야기도 웃기게 이야기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처럼 별 거 아닌 일도 사건으로 둔갑시키는 명탐정의 힘, 아니 소설가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거창한 살인도 악랄한 범죄도 없는 평범한 일상을 미스터리로 바꾸는 힘 말이다.



정신이 들자 도서관 창문으로 붉은 저녁 햇살이 들이비치고 있었다. 나는 끝도 없는 상상을 접고, 책 더미를 안고 일어섰다. 어차피 상상에 지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야기에 나는 녹초가 되어버렸다._59쪽


여기서부터는 나의 상상이다._304쪽







이야기 이면의 이야기


사소한 미스터리도 흥미롭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익명 작가의 연재 단편 소설이 그 단편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익명 작가를 섭외하는 데 오간 편지, 그리고 1년 후의 편집 후기는 단편 소설을 부가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을 맡는다. 열두 편의 단편은 개별 작품 내의 수수께끼만이 아니라 작품 밖의 수수께끼까지 숨기고 있는 것이다. 난 몇 가지 사실은 읽어가며 자연스레 알게 되었지만, 그걸 어떻게 연결해 볼 생각은 못했다. 나도 참 둔한가 보다. 익명의 작가가 누구인지, 뜬금없이 느껴지는 단편 소설은 왜 여기에 끼어 들어갔는지. 나야 끝까지 다 읽고서야 '그런 게 있었어?' 싶었지만, 편집 후기를 보기 전에 나나미처럼 추리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미스터리한 일상도, 일상을 미스터리로 바꾸는 것도. 나도 이런 식으로 스쳐가는 사건들을 해석할 수 있으면 생활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나도 이런 일상을 겪을 수 있다면! 근데 그런 식으로 관찰도 못 하겠고, 나는 명탐정이 아니라 사건도 안 오니까 그냥 안 미스터리한 일상이나 보내야겠다. 


그 대신 시간이 있었다. 시간이 있으면 평일의 텅텅 빈 도서관에 하루 온종일 죽치고 있을 수도 있고, 걸어서 다른 동네 주민회관에서 상영해 주는 옛날 영화를 보러 갈 수도 있다. 전날 밤 기침 때문에 고생하지 않고 기분 좋게 일어났을 때에는 조금 멀리 나가 다마천까지 쑥을 뜯으러 갈 수도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은퇴한 노인네 같은 생활이었지만, 그런 생활을 계속하던 중에 나는 생각지도 못한 재능을 발견했다. 즉 나는 혼자 놀기에 능했던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뜻밖의 발견이었다._16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