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Trail: Paper Poetry (Hardcover)
David Pelham 그림 / Little Simon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색이 많이 들어가는 그림은 현란하고 화려합니다. 색이 없이 하얀 공간은 순수하고 때로는 우아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웨딩드레스처럼요. 범접할 수 없는 순수함. 그런데 그 하얀 공간에 누군가가 흔적을 남겼습니다. 지저분한 흔적은 아닙니다. 은색의 가느다란 선은 순수를 더럽히기는 커녕 그 안에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팝업북 『TRAIL』 이야기입니다.

『Trail』은 하얗습니다. 은색 선을 빼면요. 책 속의 세계는 탈색되어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쓰이지 않고 그려지지 않은 하얀 종이는 접히고 잘리고 붙는 것만으로 세계를 만들어 갑니다.
표지의 구멍에서 나온 흔적은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뒷장으로 이어집니다.
새, 도마뱀, 잠자리. 작은 생명들이 풀 숲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하얗고 투명한 느낌을 전하기 위해 비닐도 쓰이네요.
이렇게 색이 배제된 팝업은 팝업 그 자체의 순수한 조형미를 보여줍니다. 하얀 종이만으로 이렇게 화려하고 복잡한 느낌을 전해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색이 없는 세계 임에도 형태가 분명히 보인다는 게 대단하지 않나요? 작가는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을까요.
페이지마다 이렇게 짧은 문장이 실려있습니다. 휠을 돌려 가며 읽을 수 있습니다.
짐작하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책 위에 흔적을 남겼던 건 달팽이였습니다. 긴 여행을 끝내고 연못 옆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호수에 비친 모습은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기하네요. 그럼 이 하얀 세상은 본래 세상의 그림자였던 것일까요?
팝업으로 만들어낸 시, Trail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