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3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서부해안 연대기 3권 『파워』, 개강 후 학교에 들고 가서 읽었다. 졸린 눈, 고픈 배를 참아가며 읽는데 왜 그리 책장이 안 넘어가는지. 오랜만에 간 학교가 너무 낯설어서 그런 것인지, 수면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파워에 적응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주인공도 확 바뀌고, 오렉도 안 나왔기 때문이려나. 



가비르의 기억


이번 주인공 가비르도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가비르 자신은 그 능력을 '기억'이라고 부른다. 그 능력은 이렇다.


1. 많은 것들을 손쉽게 기억할 수 있다. 시, 책 내용도 그냥 기억한다.

2.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한다. 환시를 본다.


이 두 가지 능력이다. 1번의 능력은 신비스러움이 덜하기는 하지만 단순히 머리가 좋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좋다. 기억하는 방식도 좀 다르고. 2번 능력의 경우는 상당히 고원지대의 '선물'과 비슷하다. 이렇게 능력을 지닌 사람이 남아있는 부족들이 있으니 고원지대가 그렇고, 가비르가 태어난 늪지 또한 마찬가지다. 늪지에서는 때때로 이렇게 '천리안'을 지닌 사람들이 태어나고는 한단다. 한 부족당 하나의 능력. 보이스에서 언급되었듯이 모든 이주민들이 처음에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문명이 덜 발달하고 척박한 곳일 수록 아직 그 능력-선물-힘이 강하게 남아있는 듯 하다. 근데 솔직히 가비르의 2번 능력이 도움되는 때는 별로 없었다. 보아봐야 의미를 모르면 무슨 소용이랴. 메메르의 예언같다.





자유라는 개념


그러나 가비르가 자라난 곳은 늪지대가 아니다. 도시 연합 중 에트라. 이 도시연합은 고대 그리스를 연상시킨다. 가비르는 에트라의 한 집안의 노예로서 누나와 함께 자라난다. 노예이나 지식인층인 노예, 그러나 생각은 깨지 못하고 주인에 대한 확고한 신뢰만이 있는 그런 노예가 바로 가비르다. 지식인이면서도 자유에 대한 갈망이 없는 것은 그 체제에 순종하게 하고 당위성만을 부여해주는 고전만을 익히기 때문이다. 지식은 지식이되 창조할 수 없이 그저 왼 것을 읊는 것만이 가비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보이스에서 메메르가 찾고자 한 자유와 파워에서 가비르가 찾게 된 자유는 그 모습이 조금 다르다. 안술은 점령당했기에 메메르는 이미 자유라는 개념을 알고 있고 주체로서 정신이 정복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비르의 자유는 노예와 주인 간의 계급 갈등 사이에서 있는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행복할 수도 있었다. 


'거짓에 대한 믿음은 거짓된 삶이다.'

p.310



오렉의 역할


그러나 가비르는 우연히 현대시인 오렉 카스프로의 시를 접하면서 의식의 저변이 넓어진다. 오렉은 파워에서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보이스에서 초반에 나타나 이야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던 것과는 다르게 파워에서는 그의 글만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끝부분에 가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기대했던 것과는 약간 어긋났지만, 영향만큼은 보이스에 범접한다. 어디서나 오렉의 역할은 자유의 불씨이다.


겨울밤의 어둠 속에서 우리는 눈이 새벽을 구하듯

모진 추위의 굴레 속에서 심장이 태양을 갈망하듯

눈멀고 속박당한 영혼이 너를 소리쳐 부르노라

우리의 빛이여, 불이여, 생명이여

자유여!

p.166



가비르의 자유 찾아 삼만리


그러니까 이 책은 가비르가 자유가 무엇인지 배워나가는 내용이다. 노예에서 도망자로, 이방인으로 지내며 사람들을 만나고, 속하기를 원하나 쉽지 않다. 자유를 말하지만 똑같이 사람들을 노예취급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능력을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차지하려는 사람도 있다. 죄책감에서, 기억에서 자유로워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자신을 옭아매던 악연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 가비르의 진정한 자유 아니었을까 싶다.(여담인데 난 대체 호르가 왜 가비르를 그렇게 싫어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단순한 선악개념인가?) 


오렉을 다시 보지는 못하겠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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