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 바디스 블랙 로맨스 클럽
아이작 마리온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좀비와 로맨스. 좀처럼 어울릴 것같지 않은 조합이다. 좀비를 물리치면서 생존자들 사이에 피어나는 사랑이라면 모를까. 남자주인공이 좀비라고 한다. 맙소사. 그게 가능한 건가? 죽고 죽이는 관계가 아니라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라니. 도무지 말일 안 될 것같다. 아무리 사랑은 종족만이 아니라 죽음도 넘는다지만 이건 좀 징그럽다. 그래도 신기한 설정이다. 『웜 바디스』의 첫인상이었다. 


 

 


철학자 좀비 R

여느 좀비물과같이 세상에는 좀비가 늘어가고 있다. 이것이 질병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모른다. 그런 좀비들의 세상에 R이라는 좀비가 살고 있다. 소설은 R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죽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는 R은 '나는 죽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다.(p.15)'라는 문장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R은 단순히 사람을 죽여서 먹는 다른 좀비들과 다르게 정말 많은 생각을 한다. R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이름을 잊은 것이 가장 큰 비극이라고 한다. 자신의 존재를 고민하는 R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좀비의 전형에서 꽤나 벗어나있다. 


페리의 기억

좀비들은 사람의 뇌를 맛보면 그 사람의 기억을 맛볼 수 있다. R은 사냥 중에 페리라는 소년의 기억을 보게 된다. R은 페리의 기억에서 본 줄리를 좀비들의 습격에서 구해 숨겨준다. 페리의 기억과 R의 의식. 둘은 무의식 중에 섞이고 다시 나누어지는 것을 반복하며 R은 페리의 기억을 지속적으로 겪는다. 심지어는 뇌를 먹고 난 이후까지. 이런 이상한 현상이 줄리와의 사랑에 있어 R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그리고 R은 좀비를 넘어선 그 어떤 존재로 변해간다. 

"하지만 우리는 이전의 삶을 기억하지 못해. 우리는 우리의 일기조차 읽을 수 없다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우리가 있는 곳에 우리가 존재하지.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있어.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음에 어디로 가는가의 문제야."
"정말로 우리가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건가?"
"잘 모르겠어."
"우리는 죽은 자야. 우리가 정말로 뭔가를 선택할 수 있을까?"
"아마도. 만약에 우리가 그럭저럭 나빠지기를 원한다면."
-p.146


 



사랑은 만병통치약

웜 바디스는 결국 '삶과 죽음을 넘은 사랑'이야기이다. 이야기가 그리 치밀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웜 바디스의 이야기는 로맨스답게 흘러 가고, 그 장르의 속성을 잘 지킨다. 뒤쪽에 드러난 좀비의 시작에 대한 설명이 좀 흐지부지된 감이 없잖아 있다. 미리니름이라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야겠지만 약간 써보자면, 그로써 일반적인 좀비물을 넘은 특이한 정체성을 확립했으며 그것 또한 꽤나 '로맨스'스럽다. 게다가 철학자 좀비가 전하는 이야기다운 결말이라고 할까. 설정에서 현실성을 버린 대신 주제를 형이상학적인 궤도 위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사랑은 어디서나 이야기하듯이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R과 줄리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로 사랑을 믿고 사람을 믿으면, 생을 회복하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이름을 잃은 것이 비극이라고 이야기하던 R이 변화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사랑을 통한 치유의 한 예시가 된다.

"음... 까다로운 부분인 것 같은데. 과거는 역사로 만들어지고... 미래는 그냥 희망인 것 같아."
"아니면 두려움."
"아니야." 그녀는 머리를 단호하게 흔들고 내 머리카락에 낙엽을 꽂는다. "희망이야."
-p. 186


영화화 진행 중

 


웜 바디스는 로맨스로서의 재미에 충실하면서 좀비물의 재미도 잘 반영하고 있다. 인터넷에 연재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출간도 되기 전에 영화사에서 판권을 사가 현재 영화화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영화 트와일라잇의 제작사에서 만들고 있으며 올해나 내년 쯤에 개봉한다. 북트레일러도 직접 제작했다는 훈남 작가 아이작 마리온은 도무지 말이 안 될 것 같던 좀비 로맨스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하다. 좀비 남자주인공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니. 이것 참 신기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