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울프
닐 게이먼.케이틀린 R. 키어넌 지음, 김양희 옮김 / 아고라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난 베오울프의 이야기는 이전에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다. 영화로도 책으로도. 그저 그런 게 있대 수준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다. 도서 수집가들을 다룬 논픽션 『젠틀 매드니스』를 읽으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가장 오래된 영미 문학. 이리저리 훼손되어 알아볼 수 없는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보관에 신중을 가하며 복원하려고 한다고 했던가? 그리고 영화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관심이 없었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는 약간 관심이 생겼을까. 그러나 읽을 기회는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베오울프』를 발견했을 때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다.


 


닐 게이먼


사실 내게 닐 게이먼은 그리 관심 가는 작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들을 몇 번 읽어본 적은 있지만 빠져본 적은 없다. 닥터후의 에피소드 몇 개를 쓰든, 샌드맨을 쓰든 '닐 게이먼이었구나!' 이상으로 인식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유명하고 대단한 작가임은 틀림 없다. 이전에 읽었던 『신들의 전쟁』도 나에겐 잘 안 맞았지만 이야기나 소재가 매력적인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닐 게이먼은 상도 엄청 많이 받았는데, 휴고상, 네뷸러상, 브램스토커상 등 SF, 판타지 쪽에서 권위 있는 상들은 다 휩쓴 듯...(그 상 받은 작품이 신들의 전쟁이다.) 어쨌든 그런 닐 게이먼이 베오울프를 다시 썼다. 공동 작가인 케이틀린 R 키어넌은 닐 게이먼만한 유명세는 없지만 몇 번 상을 받은 작가라고 한다. 



세련되어진 영웅시


난 베오울프 원작은 읽어본 적이 없어 이들이 베오울프를 어떻게 고쳤는지, 어느 부분을 덧붙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처음 읽을 때 오래된 이야기 치고 참 세련되었네 싶었다. 인간적인 괴물들, 인간적인 영웅.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새로 덧붙이고 강조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어떻게 바뀌었든 간에 재창조의 방향은 오랜 영웅시를 현대화시키는 쪽이 아니었나 싶다. 구전되다가 8세기 쯤에 기록된 오래된 이야기라니, 얼마나 케케묵었을지는 안 봐도 짐작할 수 있으니까. 닐 게이먼은 그걸 현대적으로 바꾸어서 술술 읽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렇다. 덴마크의 흐로드가르왕의 연회 중 괴물 그렌델이 쳐들어온다. 많은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와중, 바다에서 베오울프가 온다. 베오울프는 그렌델을 물리치고 왕이 된다. 그리고 왕이 된 베오울프를 용이 위협하는데 그 용도 물리치고 덴마크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1부 그렌델은 왕이 되기 전, 2부 용은 왕이 된 후의 이야기이다. 

 


베오울프는 줄거리만 보면 별 다를 게 없는 영웅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소설을 읽지 않고서는 북유럽 신화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기독교가 전파되고 있는 사회상, 인간적인 괴물들의 괴로움, 물의 마녀의 매혹적인 모습들은 알 수 없다. 특히 내게는 베오울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닐 게이먼은 이 인물을 뻔한 영웅이 아니라 흔들리고 유혹에 빠지며 때로는 불쾌하기까지 한 인물로 만들어놨다. 톨킨의 『후린의 아이들』의 투린과도 같이 영웅인데 영웅인 걸 인정하기 싫은 그런 모습들을 보이는 것이다. 또한 베오울프를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어놨는데, 베오울프의 자기 정의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나, 그렌델? 그렇다면 알려주지. 나는 토막 내는 자, 찢는 자, 베어내는 자, 그리고 후벼파는 자다. 나는 어둠의 이빨이며 밤의 발톱이다. 나는 네가 네 자신이라고 믿는 모든 것이다. 나의 아버지 에즈데오우는 나를 베오울프라고 이름지었다. 벌들의 늑대라는 뜻이지. 네가 수수께끼를 좋아한다면 말이야. 이 악마야."-p.144

"나를 기억해주오." 그가 말했다. "왕이나 영웅, 악마를 죽인 자로 기억하지 말고, 실수를 저지르고 결함이 있는 평범한 남자로 기억해주시오. 그게 내가 기억되고픈 모습이오."-p.321


전통적이며 현대적인 옛이야기

닐 게이먼의 『베오울프』는 전통적이면서도 세련되었다. 이제까지 그의 작품에서 느꼈던 것과 같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들게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전해온 이야기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하고, 베오울프의 내용이 궁금했던 나에게 충분한 답을 주었다.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라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베오울프를 통해 알게 되었다. 북유럽 신화에 기반한 오래된 영웅 설화가 궁금한 분이라면 이 책을 읽을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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