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와 뼈의 딸 1 -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4-1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4
레이니 테일러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연기와 뼈의 딸』은 사실 별로 읽을 생각이 없었지만, 북트레일러를 보고 한눈에 반해 고민하다가 결국 질러버리고 말았다. 파란색으로 치장한 신비로운 아가씨의 표지를 감상하다가(아무리 봐도 주인공 카루는 아니다. 카루는 눈이 검은색. 그럼 이건 누구일까?) 표지를 넘기면 책 날개에 파격적인 핫핑크 머리의 여성분이 웃고 있다. 파격적이다 못해 현실감이 없는 색이다. 참으로 재기발랄하고 파격적일 거 같은 이 사람이 레이니 테일러. 과연 이런 사람은 어떤 글 쓸까? 


 

 


 

파란 머리 소녀 카루

연기와 뼈의 딸은 로맨스 판타지다. 요즘 많이 나오는 영어덜트 소설되겠다. 낭만의 도시로 잘 알려진 프라하에는 파란 머리의 소녀 카루가 살고 있다. 학교에서 미술공부를 하는 카루는 전 남자친구 문제로 고민하고, 친한 친구와 노는 것을 좋아하고, 미술을 사랑한다. 그런 카루에게는 비밀이 있다. 카루는 괴물들의 손에서 자라 그들의 심부름을 다닌다. 카루는 브림스톤을 위해 전 세계를 다니며 이빨을 모으는 일을 하던  천사를 만난다. 세라핌 아키바는 과거의 일 때문에 키메라들에게 증오를 품고 있으며 브림스톤의 집을 불태운다. 이에 카루는 망연자실하며 키메라들의 세계로 떠날 길을 찾는다. 

 

 


"널 놔주는 건, 카루, 나비가 날아갈 수 있게 창문을 열어주는 것과 같아. 그렇게 밖으로 날아간 나비가 돌아오길 바라선 안 된다."

 

"난 빌어먹을 나비가 아니라고요."

"아니지, 넌 인간이지. 네가 있을 자리는 바로 이 인간 세계야. 너의 유년기는 거의 끝났고."

"그래서 뭐요? 내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거예요?"

"그 반대야. 그 어느 때보다 더 네가 필요하단다. 아까 말한 것처럼, 오늘이 네가 우리를 떠나는 날이 아니라서 기쁘단다."

-p.97

 


 



천사 아키바와의 사랑

자, 여기서 악마의 딸인 카루와 천사 아키바가 사랑에 빠질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둘 사이의 종족적 대립. 천사와 키메라들 사이의 전쟁, 서로의 혐오가 그들 사이에 장애물로 드리운다. 종족을 넘어선 금지된 사랑이라는 뻔한 소재에 진부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리 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일단 키메라와 천사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순수한 존재로 악마라고 하기 힘들고 행동은 평범한 소녀에 가깝다. 아키바와의 사랑은 일견 그 무지의 소산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아키바와의 사랑이 필연이고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알려지는 충격적인 사실들이 그들 사이의 해답을 주면서도 더 큰 장애로 다가오고, 아키바의 마지막 고백은 독자들마저 충격에 빠지게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다음이 어떻게 될지 쉽게 감을 잡을 수 없다.

"사랑은 사치예요."

 

"아니요. 사랑은 근원적인 원소인 걸요."

 

-p.436

 

희망이라는 이름


연기와 뼈의 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희망'이다. 카루를 키운 브림스톤은 소원을 거래하는 위시멍거이다. 그런 그가 소원보다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이 희망. 그렇기에 그는 카루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으며 절대 소원을 함부로 사용하도록 하지 않는다. 카루의 존재 그 자체가 희망 없이 지속되던 전쟁에서 피어난 희망을 의미하며 전쟁의 끝, 평화의 시대가 올 수 있을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다. 카루는 소원을 쉽게 이루지는 않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영혼은 어느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다우며 절대 꺾이지 않는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잔인한 것이 희망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후에 희망이 꺾일 때 그 무엇보다 큰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 꺾이지 않는다면, 희망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마법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난 희망은 품지만, 소원은 빌지 않아. 둘은 다르단다, 아가야."

카루는 그 말을 마음속으로 곱씹어 보면서 만약 그 다른 점을 그녀가 생각해 낼 수 있다면, 브림스톤이 대견하게 여길 거라고 생각했다. 문득 뭔가가 떠오른 그녀는 그것을 애써 말로 표현했다. "희망은 나에게서 나오는 거고, 소원은 그냥 마법이니까요."

"소원은 가짜야. 희망이 진짜지. 희망은 그만의 마법을 부린단다."

-p.176


"아, 이건 마법이 아니에요. 그 소원들이 정말로 이뤄지는 건 아니거든요."

"그럼 왜 이런 걸 하는 거죠?"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법이라기보다는 희망이죠. 희망은 아주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어요. 여기에 진짜 마법은 없지만, 자신이 뭘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지 알고 그 희망을 자신 속의 빛처럼 간직하고 있으면, 마법처럼 그런 일들이 이뤄진답니다." 

p.349-350



간만에 신선한 판타지


『연기와 뼈의 딸』은 정말 간만에 판타지스러운 판타지를 읽었다는 느낌을 줬다. 그동안 읽은 게 판타지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이면서도 신선한 판타지는 정말 오랜만인 듯. 로맨스에 우선해서. 사랑이 있고 고통이 있고 희망이 있다. 천사도 있고 악마도 있고, 마법도 있다. 다른 세계도 있고. 닭살 돋는 로맨스이기는 하나, 그리 달콤하지도 않다. 로맨스의 달달함보다 판타지의 마력이 강하다. 씁쓸하면서 환상적이다. 특히 앙칼진 고양이같은 카루가 멋있다. 그 희망을 나눠가지고 싶을 정도로. 이 이후에 불행 밑에 있다는 '카루(희망)'가 어떻게 피어날지 기대된다. 원서 사서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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