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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토익 만점 수기 -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심재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나의 토익 만점 수기』를 처음 봤을 때 생각했다. '이게 소설 제목이라고? 살벌하잖아.' 그렇다. 정말 살벌하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풍의 책일 것만같은 표지. 그런데 사실은 소설이었다. 그것도 제목과는 다르게 위트가 넘치는 소설. 술술 읽혔다.

엉뚱 발랄한 이야기
토익 590점의 '나'는 토익 점수를 올리기 위해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난다. 바나나 농장으로 위장한 스티브의 마리화나 농장에 인질로 지내면서 영어 공부를 하게 된다. '나'는 토익을 핑계로 이주일을 닮은 아버지와 지진에서 도망쳤고, 스티브 농장의 지하에는 아폴로 13호를 믿는 여자가 살고 있다. 이웃 농장에는 토익 리스닝 A, B가 지내고. 나는 토익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한다. 모든 일을 토익과 연관해 이야기하는 나의 태도는 익살스럽다.
달콤 씁쓸한 바나나
소설 내용만 보자면 정말 웃기다. 현실에는 일어나지 않을 법한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이야기. 황당무계하다. 그런데,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재미있는 내용을 보고 웃어야하는데 웃기가 힘들다.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나는 어학연수를 가서 무얼 했던가. 나는 눈이 두 개 달렸나. 외눈이 아닌가. 이번 달에 보러갈 토익은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제대로 공부 안 했는데. 이렇게 절박했나? 아니, 근데 이렇게 절박해야하나? 990점이 뭔데 '나'는 800점이 넘어도 만족을 못할까. 그게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일까. 읽고 있는 내내 심란해진다. 씁쓸하다. 꼭 스티브의 바나나 농장같다. 달콤한 바나나로 위장한 마리화나 농장. 그게 바로 이 소설이다.
만점을 받는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토익 만점은 뭐, '나 눈 두 개 달렸소' 하는 것과 같지."
-p.18

에휴 그 놈의 토익
토익. 그놈의 토익. 토익 만점은 눈 두 개 달린 거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나'는 그 눈 두 개를 얻기 위해 죽을 고비를 넘겼다. 토익 두 눈을 달기 위해 많은 걸 버려야했다. 토익 만점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솔직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 사회는 목숨과 건강을 내걸도록 우리를 내몰고 있지 않은가. '나'가 실제로 어학연수에서 얻어온 것은 토익 만점만이 아니다. '나'는 통나무집에 한류를 전파했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토익 정신은 그 모든 것을 떠나게 만들었다. 이상적으로 봤을 때 가장 중요한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현실적으로 가치있는 가치들을 좇아 대기업 면접을 본다. 그럼에도 한 켠으로는 가슴 따스해지는 그 가치들을 지키고 있다. 과잉대응을 포기하고 친구를 위해 자신의 손실을 숨긴다. '나'라는 존재는 토익을 준비하지만 거기에 잠식되지는 않은, 내가 되고 싶지만 정말 어려운 그런 사람이다. 긍정적이고, 유머러스하며, 현실적인 척 하지만 전혀 현실적이지도 못하다.
"한국이란 나라가 정말 궁금하군."
스티브는 말했다. "도대체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그 나라 국민이 되는 거야?"
-p.208
내 눈은 두 개
어학연수는 절대 안 갈 거라고 했을 때가 있었다. 결국 다녀왔다. 다음 주면 토익 시험을 본다. 스펙 쌓을 걱정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20대. 두 눈을 가지고 사는 게 왜 이리 힘든 건지 모르겠다. '내 눈은 두 개'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때가 과연 올까. 어느 쪽이든 눈 두 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눈 하나를 내버려야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걸 아는 모든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이 소설을 읽으며 낄낄거리면서도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