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요새 나는 책을 아무 정보도 없이 고르는 일이 거의 없다. 아주 작더라도 무언가는 알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작가라거나, 소재라거나, 하다못해 무슨 상을 받았다거나 베스트셀러였다거나 장르 정도는. 이 『제인에어 납치사건』은 정말 오랜만에 아무 정보도 없이 제목과 표지만 보고 선택한 책이다. 지난번 캐츠를 보러 부산에 들렀을 때 서면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갔었는데, 거기서 살 책을 고르다가 발견했다. 너무 SF와 판타지만 고르나 싶어 다른 장르를 사야지 싶어 집어들었다. 제인에어 납치사건이라니, 꼭 제인에어를 패러디한 미스터리일 거같은 제목 아닌가? 내 추측은 첫 장을 읽을 때 산산히 깨졌다. 시간여행을 하는 아버지에 대한 언급을 읽으며 낙담했다, 난 결국 또 환상소설을 골라버린 모양이다. 나에게는 무슨 환상소설 감지 안테나가 있는 걸까.

 


 


이상한 세계

제인에어 납치사건은 1980년대의 영국이 배경이란다. '란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도무지 시대를 종잡는 게 어렵기때문이다. 처음에는 시간여행이 언급되기에 미래가 배경인가 싶었는데 일상 생활은 지금이랑 비슷, 아니 지금보다 옛날같고. 근데 괴상한 발명품들은 지금을 더 앞질렀으니까. 이 세계는 시간여행이 가능하고, 늑대인간과 뱀파이어가 있으며, 허구와 현실의 경계도 단단하지 않다. 즉 현실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평행우주적인 세계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시간여행의 영향도 꽤 커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바뀌기도 한다. 문학 작품 속으로도 들어가볼 수 있다.

"마음 속에 감춰두게나, 서즈데이. 하지만 나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네. 실재와 허구 사이의 방어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약한 거야. 얼어붙은 호수와 비슷한 면이 있지. 수백 명의 사람들이 건너서 건널 수 있지만, 어느날 저녁 약한 지점이 드러나고 누군가가 거기로 떨어지는 것이지. 다음날아침쯤이면 그 구멍은 얼어있을 거야. 디킨스의 『돔비와 아들』읽어봤나?"-p.312

이 세계가 우리와 다른 점 중 하나는 모든 사람들이 예술에 열광적이라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 스포츠보다 미술과 문학이 더 대중적이다. 수많은 영문학 작품의 인용은 물론이고, 길 가다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누가 썼나를 토론 하는 사람들도 부기지수이다. 훌리건들처럼 각 문학작품의 팬들이 싸우기도 한다. 특수경찰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특수작전망에는 문학을 전담하는 부서도 있다. 바로 그 문학을 전담하는 SO-27의 런던 셰익스피어를 담당하고 있던 서즈데이 넥스트가 바로 주인공이다.


제인 에어

아마 누구나 생각해볼 것이다. 책 속으로 들어가 그 장면을 직접 보고 싶다고. 책 속의 인물들이 나온다거나 책 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들은 꽤 있는 편이다.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는 영국 드라마 <오만과 편견 다시 쓰기(Lost in Austin)> 역시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중에 하나. 그래서 로체스터가 어린 서즈데이의 눈 앞에 직접 나타났을 때 그런 내용을 기대한 게 사실이다. 물론 다아시만큼 잘생기진 않았지만 로체스터도 나쁘지는 않잖아? 그러나 그건 나의 하잘 것 없는 상상에 불과했다. 어쨌거나 로체스터의 진정한 사랑은 제인 에어니까!

제인 에어가 전반적으로 계속 언급이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제인 에어의 결말에 관한 언급이다. 계속 의문이 들었다. 소설 전반부에서 제인 에어의 결말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서즈데이 또한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나온다. 그 결말이 제인이 리버스 씨와 함께 인도로 간다는 거였다. 저건 뭔가 확실히 아닌데 제인에어의 결말이 어쨌는지의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 긴가민가하며 의심했다. 결국 알고보니 의도적으로 제인에어의 결말을 바꾼 것이었다. 

 



아케론 하데스

이 소설이 제인에어에서 소재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스릴러에 가깝다. 배경은 SF라도. 최악의 범죄자 아케론 하데스의 뒤를 좇는 것이다. 아케론 하데스는 순수학 악의 존재로 서즈데이가 일상을 벗어나 위험한 활동을 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마이크로프트가 만든 '산문의 문'를 훔쳐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협박한다. 기나긴 서즈데이와 아케론의 추격전에서 사실 로체스터나 제인 에어가 나오는 부분은 많지 않다. 제인 에어 나오기를 기다리기보다 그냥 서즈데이의 생활과 이 세상 굴러가는 일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 게 편하다. 아케론이 어떤 음모를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서즈데이가 그를 찾아내는지가 중심이야기이지 제인 에어는 절대 중심이 아니니까. 서즈데이를 따라 가다보면 제인 에어의 결말은 제자리를 찾아있고 해피 엔딩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번역체 때문인지 긴박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번역

흥미로운 이야기이지만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탓인지 집중하기가 편치 않다. 직역체가 많다고 해야할까. 그 탓인지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매력적이여야할 주인공 서즈데이의 매력이 반감되고 평면화 되었다. 아케론의 행동도 무섭지 않고. 이상하다. 『매치드』랑 『어글리』 번역자랑 같은 사람 같은데 거기서는 느끼지 못한 걸 느꼈다. 원래 내용이 이건 좀 심각하고 다른 둘은 하이틴 소설이라서일까, 아니면 번역자가 발전을 했던 걸까? 양 쪽 다 영향이 있겠지만 후자의 영향이 크지 않나 싶다. 이건 2003년에 나온 것이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원작이 산만한 걸지도 모르지.


어쨌거나

번역, 문체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면 제인 에어나 영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거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수없이 인용되는 영문학 고전들이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기는 하지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굳이 제인 에어가 아니라 시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빌빌 꼬이고 변형되는 역사에 관심을 느낄 수도 있겠다. 무엇에 초점을 맞추든 흥미로운 세계라는 것은 분명하니까. 그나저나 제인 에어를 읽어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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