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몬
다니엘 수아레즈 지음, 송기범 옮김 / 제우미디어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컴퓨터는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많은 것들이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진다. 가상세계가 현실에 영향을 끼치고 그 구분이 모호해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고 시스템이 바뀌었지만, 사람의 사고 체계와 가치관은 아직 수천 년 간 쌓여온 아날로그 방식을 따르고 있다. 인간이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니엘 수아레즈의 이 소설 <<데몬>>은 이런 현실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한 사람, 아니 두 사람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사이버 스톰 직원인 조셉 파블로스와 초프라 싱이다. 두 건의 죽음은 살인사건으로 추정되어 경찰과 FBI가 수사를 시작한다. 일반적인 소설과 달리 범인은 초반부에 금방 밝혀진다. 스스로 자수하는 것이다. 범인은 천재적인 게임 개발자인 매튜 소블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죽은 매튜 소블은 살아있을 때 짜놓은 데몬 프로그램들로 사건들을 일으키고 사회를 조종하기 시작한다. 죽은 사람이 프로그래밍한 대로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적인 살인 사건이 '누구'에 주목한다면 이 소설에서는 처음부터 매튜 소블이 자신을 밝힘으로써 '왜'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어째서 매튜 소블은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인가?

데몬들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시스템들을 장악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주로 FBI와 경찰)이 죽어나가기도 한다. 데몬은 통신망을 통해 모든 것을 조종한다. 데몬이 조종하는 사회는 마치 온라인 게임이 그대로 현실에 발현한 것 같았다. 아니, 말 그대로 현실이 게임이 되었다. 데몬의 명에 속한 사람들은 주어진 퀘스트를 수행하여 경험치를 쌓고 레벨을 올린다. 현실이 가상의 세계로 옮겨진 게 아니라 가상이 현실로 자리를 옮긴 셈이다. 앤지 앤더슨과 그랙, 모슬리는 그 게임의 플레이어들이다. 원래 사회에서는 돈도 없고 권력도 아무것도 없는 이들이었지만 데몬에 협조함으로써 많은 것들을 얻는다. 데몬이 이들에게 제공하는 사회는 원래 온라인 게임이 그렇듯이 실력이 있고 충실히 일을 하기만 하면 성공하는 사회이다. 데몬은 소외계층이 기득권층을 엎어버릴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기도 하다.

물론 데몬에 의해 구현된 이 현실의 게임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데몬은 스팸 메일 발신자들을 없애고 포르노, 도박 사이트들을 없앴다. 데몬에 의해 조종되는 사회는 긍정적일 수 있다. 아마 소블은 그의 이상적인 세계를 현실에 구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안에 개인은 없다. 시스템만이 있을 뿐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일을 한다. 그들이 살상무기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계적으로 일을 한다. 산업사회의 노동자들처럼 현대의 인간들도 이제 시스템의 부속품이 된 것이다. 디지털 사회에서 구현 가능한 두 가지 가능성, 빅 브라더라는 강력한 권력의 탄생과 직접 민주주의의 탄생이라는 상반된 이야기가 동시에 구현되는 패러독스가 소설에서 펼쳐진다.

이 소블의 기괴한 사회에서 벗어난 인간이라고 한다면 세벡과 로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세벡은 이미 소블이 안배한 계획 선상에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한 사람이다. 그리고 로스는 소블이 생각지 못한 변수이다. 소설의 중심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두 사람이지만 둘 다 영웅은 되지 못한다. 한 무기력한 개인이 있을 뿐이다. 다만 그들이 하는 것은 그들 자신으로 남아있는 것 뿐. 그 뿐이다. 로스는 실체가 없기에 싸울 수 있지만 힘은 없다. 결국 두 사람은 시스템 속에 편입 되거나 떨어져 나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읽으면서 많은 혼란스러웠다. 대체 FBI는 누구와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며, 왜 싸우는 것인지. 실체가 없는 데몬이라는 존재가 과연 사라질 수 있는 것인지. 소블은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건지.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이 현대 사회에서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섬뜩했다. 기술의 지배자가 아니라 기술에 지배당하는 인간. 우리는 정말 이 모든 도구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