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크로스로드 SF컬렉션 3
이영도.듀나 외 지음 / 해토 / 200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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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는 이영도, 듀나, 인태운, 송경아, 설인효 노기욱, 김보영, 김몽, 김선우, 백상준.
웹진 크로스로드에 올라갔던 단편들을 모아 출간한 SF단편집이다.
종이가 좀 두껍고 뻣뻣한 재질이라 책이 무겁게 느껴진다.


이영도 <별뜨기에 관하여>

이건 사실 크로스로드에서 한 번 읽었다. 하지만 책으로 다시 읽으니 색다르다. 다른 작품 '카이와 판돔에 관하여'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문교대책위원회의 의도로 지구인과 위탄인은 서로의 파트너로 선택된다. 리볼피트인의 신이 된 위탄인은 화합의 신의 별자리를 필요로 하고, 짝패인 지구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별자리는 보는 위치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그걸로 필요한 별자리를 떠서, 의미를 부여한다. 작가는 사물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지만, 이영도 작가만큼 독특한 시선으로 단어의 의미를 재창조해내는 건 별로 보지 못 한 것 같다.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한달까. 이 단편도 그 특징이 살아있다. 별뜨기라는 새로운 개념부터 잠에 대한 것까지. 인류는 꿈에 빠져 있지만 그 꿈이 무의미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듀나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한국의 대표적인 SF작가인 듀나의 단편이다. 생명의 논리. 살아 숨쉬고, 변화하고, 현재 있는 것만을 믿는 세상에 죽음의 논리가 들어온다. 살아 있는 세상에서 죽은 세상으로. 말의 세상에서 글과 기록의 세상으로. 나라는 인간부터가 사실 죽음의 논리에 충실하고, 기록을 사랑하고, 현재보다는 과거에 충실하지만 이 세계의 변화가 그닥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삶에서 죽음으로 세상이 변화하는 것 같았달까. 물론 촌장의 태도가 모두 바람직하지는 않았겠지만, 발전과 문명이라는 명목하에 그 세상은 끝없는 경쟁과 불화로 돌입했다는 생각이 든다.


임태운 <채널>

추리 소설 같기도 했다. 수사물의 포스가 팍팍 풍긴다. 뇌사 상태로 발견된 세 구의 시체. 그 의문점을 밝히려는 형사가 주인공이다. 사랑하는 딸이 있고, 한 팀인 후배도 있다. 비극적인 결말이 조금 슬프다. 한 미치광이 과학자(예술가?)의 미친 짓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갈라놓게 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일.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든, 가장 소중한 것을 파괴하는 것이든 어느 쪽이든 '나'의 파괴라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송경아 <하나를 위한 하루>

채널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부정(父情)'에 관한 이야기이다. 뭐랄까, 서사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형은 딸 하나를 달라고 한다. 아버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하나가 필요하다. 연구 재료로 과연 딸을 줄 수 있는가. 효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조선시대라면 그게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사람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설인효 <진짜 죽음>

사후 세계는 과연 있는가. 아니 있다 없다의 차원을 넘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떤 혼란이 찾아올 것인가. 사후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가정했을 때의 소설은 많이 봤지만, 없다는 건 왠지 처음 본 듯 하다. 그리고 사후 세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는 것이 문제가 될 줄도 몰랐다. 신기했다.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이 확정된다는 것은 꽤나 무서울 수 있다.


노기욱 <소울메이트>

자신의 운명의 상대를 찾아주는 후아유는 나영 이론에 입각해 만들어졌다. 후아유가 반응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인생 최고의 상대이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사랑을 후아유로 찾아다닌다. 기계로 자신의 사랑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 찾으면 헤어질 필요도, 갈등할 필요도 없는 영원한 사랑인데. 하지만 서로 싸우는 옛날의 사랑 또한 사랑이다. 조금 부족할 지라도. 완전한 사랑을 열망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불완전한 사랑은 그 나름대로 사랑으로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김보영 <0과 1사이>

왠지 가장 SF답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다. 아마 내가 SF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여행을 다룬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과학적인 이론과 사회적인 이야기를 적절히 결합한 수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시간여행보다는 역시 양자역학이 주요 소재이다. 양자역학이 뭔지도 잘 몰라서 그런지 이야기가 난해하게 다가왔다. 확률만으로 존재하는 세계, 그 확률에 의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세상. 주입식 교육과 과도한 경쟁. 시대착오적이면서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현실에 맞지 않게 과거에 매여 사는 어른들의 모습은 씁쓸하면서도, 나도 저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할 말을 잊게 만든다.



김몽 <차이니스 와이너리>

음. 좀 썰렁했다. 중국인 거리에서 만난 처남을 닮은 소년. 딱 한 번 만난 후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가짜가 판치던 중국인 거리의 가짜 음식을 단속하게 된다. 중국까지 가서 가짜 와인 공장을 단속하게 되는데, 거기서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된다. 그닥 신선한 소재도 아니었고, 이야기 자체가 흥미진진하지도 않았고, 결말도 별로... 그랬다 그냥.


김선우 <양치기의 달>

사람들은 이시스 행성을 개척한다. 그곳으로 이주해 간 사람들은 유전자 조작을 받고 램이 된다. 무리를 지어 번식하고, 인구가 늘어나면 한 무리를 만들어 이동한다. 이 램들은 들쥐와도 같다. 다른 무리를 발견하면 발작을 일으킨다. 사랑도 본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고, 나 자신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레밍의 발작도 이런 자기보존 본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백상준 <우주복>

이거 SF인줄 알았는데. 음 뒤쪽은 호러이다. 나만 무서운 걸까? 근데 실감나게 상상하자니 너무 소름끼쳐서.... 외계 생물과의 조우.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방도조차 없을 때, 오해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는지. 주인공의 마지막 생각은 일견 어린왕자를 떠오르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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