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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2033 - 인류의 마지막 피난처 ㅣ 제우미디어 게임 원작 시리즈
드미트리 글루코프스키 지음, 김하락 옮김 / 제우미디어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마지막 전쟁 이후 인류는 메트로, 즉 지하철 역에서 살아가며 생을 유지한다. 방사능과 생체 무기로 오염된 지상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지하철로 숨어든 인간들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지상의 햇빛도 모르고, 그저 버섯과 이끼를 먹으며 하루하루 연명해 가는 것이다. 하나의 지하철이 하나의 독립된 국가, 도시가 되고 다른 역으로 가는 것도 힘들다. 예전 같았으면 몇 분이면 순식간에 도달할 역이 며칠이 걸려도 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린다. 인간이 주된 장애가 되고, 지하 통로 자체도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게임으로도 만들어졌다는 이 러시아 소설은 상당히 흥미로운 설정이다. 이동을 위해 만들어졌던 장소가 정착지가 된 셈이다. 익숙한 장소가 고통과 모험의 장소로 바뀌어 버린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스크바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즐겁게 상상을 했을 것이다. 또한 지하철을 걸어가며 소설을 떠올리고 머릿 속에 그 풍경을 생생히 부활시켰을 것이다. 익숙한 장소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고 또다른 용도로 다가선다. 충격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지하철들이 모스크바 지하철이 아니라 한국 수도권 지하철이었다면 더 재미있게 느껴졌을 거 같다는 게 아쉽다.
비데엔차 역에 사는 아르티옴이라는 평범한 청년이 주인공이다. 비데엔차에는 다른 역과는 다르게 검은 존재들이 출현한다. 이들이 출현하게 된 원인에 아르티옴이 연관되어 있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아르티옴은 길을 떠난다. 검은 존재들이 들어올 문을 막으러 떠난 헌터가 돌아오지 않으면 폴리스로 가서 소식을 전하겠다고 한 약속 때문이다. 아르티옴의 여행은 고독하다. 홀로 길을 가며 온갖 고난을 겪어야한다. 물론 조력자는 언제나 존재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손을 뻗어오는 도움의 손길이 많다. 이런 점이 그가 선택 받은 영웅, 구원자처럼 보이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사실 무능력하고 나약한 일개 청년에 불과하다. 종종 답답할 정도로 도움을 받기만 한달까. 어떤 의미에서는 구원자가 맞지만, 기적을 일으키는 메시아는 아니다.
아르티옴은 고향을 구한다는 일정한 목표를 위해 여행을 한다. 여행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메트로는 이전 세상과 영 다르지만 또한 이전 세상을 그대로 축약시켜놓은 것 같다. 세계의 규모가 줄어들었을 뿐, 인간은 똑같은 것이다. 파시즘, 공산주의, 자본주의, 기독교 등의 각종 이데올로기도 부활되거나 유지된다.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었으면서도 반성하지 못하고 이데올로기 때문에 또 전쟁을 벌인다. 물론 생존이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만큼 그들의 이기적인 태도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인간들의 추한 모습 보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결말에서 밝혀진 진실 또한 그 인간의 편협함이 불러온 판단 착오였다. 그걸 생각하면 한심해서, 어이 없어서 도무지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내가 메트로에서 사는 사람이라도 그렇게 살고 행동하고 생각할 것임을 알기에 더 먹먹해지는 것이다.
뭐 어쨌든 재미있는 소설이다. 종말적 세계관이면서 묘하게 현실성도 있는 것 같고, 환상 소설적인 부분도 자주 눈에 띈다. 정말로 게임으로 만들면 재미있을 법한 스토리라인이기도 하다. 일단 아르티옴 한 명을 좇아가는 이야기니까. 러시아 지하철에 익숙하지 못해 초반에 어렵게 느껴진다는 게 단점일면 단점이다. 메트로 역사 부분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부분만 잘 넘기고 이 메트로의 세계에 적응만 한다면 아르티옴의 모험을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