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브라썸 작가정신 소설향 17
이청해 지음 / 작가정신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이야기는 간단하다. 이성간의 우정이 가능하다고 믿는 동희는 진정한 우정을 나눌 이성친구를 찾고, 초등학교 동창인 ‘나’는 동희와 사귀고 싶은 맘에 일단 자신이 그 우정의 동반자가 되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동희의 우정관을 이해할 수 없어 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동희는 그동안 정리해온 생각을 풀어놓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이 책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동희의 생각이란 것들이 다른 책, 즉 <인간의 내밀한 역사>의 한 챕터인 ‘남성과 여성 사이의 우정이 깨지기 쉬운 이유’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인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책의 이미지나 내용을 빌려올 순 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개성을 덧붙인 제 2의 창조가 되었을 때나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 어휘나 문장 전체를 베끼는 수준이 되어선 곤란하지 않을까.

“그래. 거기다 사랑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매혹적인 주장이 퍼져나가자 사랑에 대한 모든 전제 조건이 철폐되었어. 이건 인류가 해낸 발명 중 가장 놀라운 발명일거야.”(체리브라썸p102) “또 사랑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부추켜짐으로써 사랑에 대한 모든 전제 조건이 철폐되었다. 이것은 인류의 가장 놀라운 발명 가운데 하나였다.”(인간의 내밀한 역사p408)

“그렇지만 우정을 바탕으로 한 이 시험 결혼들은 모두 실패했어. 거의가 이혼으로 무너져버렸으니까. 우정을 내세운 결혼들은 부분적인 해결밖에 못 해줬대. 왜냐하면 우정이 안으로만 작용했지 밖으로는 뻗어나가지 못했던 거지.(중략) 질투의 바람이 슬쩍 불기만 해도 부부관계가 흔들렸지.(중략) 뒤집어 말하자면 배우자 아닌 이성과의 우정을 이룰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거야.”(체리p105) “그러나 우정을 바탕으로 한 시험 결혼은 연약한 구조물로 판명났으며, 흔히 이혼으로 무너져버렸다. 그 이유는 우정이 단지 내부적으로만 그 결혼을 지탱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배우자 아닌 이성과의 우정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그래서 질투의 바람이 슬쩍 불기만 해도 무너지기 쉬웠다.”(내밀한 역사p410)

“여자들은 친밀함과 감정을 나누고 자기가 열중하는 문제를 속속들이 터놓고 얘기해.(중략) 너무 밀착되면 중심이 기울지. 한쪽이 다른 한쪽한테 자극받아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반대로 한쪽이 심리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기도 해. 둘다 비극이지. 내가 보아온 우정 중 아마 반 정도가 서로에게 득이 되었을 거야. 나머지는 에너지의 낭비였어. 친구가 없는 게 두려워서 그저 참고 견디는 정도지.”(체리p108)

“여성학자들은 여성들 사이의 우정의 풍요로움과 강력함을 밝혀내는 한편, 그 우정이 불평을 주고받는 식이 되면 종종 “심리적인 우울증”이나 “심리 요법에 대한 의존”을 조장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정의 이상화에 대해 또한 경고했다. 사회학자들은 여성 사이의 우정 가운데 오직 반 정도가 순수하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 나머지는 에너지의 낭비로서 친구가 없는 것이 두려워 참고 견디는 것으로 보인다고 그들은 말한다.”(내밀한 역사p410)

“이거 봐, 넌 이걸 못 느껴? 너와 나 사이엔 이렇게 생기가 있잖아? 동성끼리의 단조로움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 안 해? 이성 친구 사이에는 확실히 활력 같은 게 있어.”(체리p125) “사람의 마음도 두뇌처럼 훈련받을 필요가 있다니까!”(체리p126) “랑베르 후작 부인. 그녀는 이성간의 우정에는 언제나 동성간의 만남에서는 볼 수 없는 “생기”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녀의 결론은 두뇌와 마찬가지로 마음도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애정이 기술의 한 형태로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내밀한 역사p413)

위의 예에서 보다시피(물론 이보다 더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이건 다른 책을 참고하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게다가 이 책 어디에도 참고서적에 대한 언급은 없다.이 책 속엔 동희는, 그리고 동희의 창조자 이청해라는 작가는 없다. 테오도르 젤딘의 뛰어난 통찰력만 있을 뿐. 난 같은 내용의 책을 다른 작가의 이름으로 읽고 싶진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