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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이야기 - 양장본
이형식 엮음 / 궁리 / 2001년 8월
평점 :
품절
<여우 이야기>를 읽게 된 건 <중세에 살기>에 나오는 우화에 관한 언급 때문이었다. 어릴 적 몇 개의 에피소드로 봤던 르나르 이야기를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펼쳐들었는데 초반 몇 개의 에피소드는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던 것들이라 슬렁슬렁 넘어갔다. 그리곤 처음 접하는 에피소드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짜증의 수위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르나르의 간계가 당시 프랑스 사회상을 빗대어 조롱한 것으로 당시 사람들에겐 웃음을 주었을는지 모르나, 내게는 별로 유머러스하거나 통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칠 줄 모르고 악행을 일삼는 르나르도 르나르지만 그렇게 당하고서도 정신 차리는 법이 없이 또 속아넘어가는 -한 술 더 떠 절친한 친구가 되기까지 하는- 멍청한 사자왕 외 그의 부하들은 뭐라 말할 수 없이 한심하다. 그래그래, 물론 알고 있다. 이 작품이 중세와 별다를 것 없는 이 사회에서도 유효한 풍자문학이라는 것을.
일명 백의의 수도사들이라 일컫는 시또파 수도사들의 행태는 지금의 기업형 종교 단체들과 상응할테고, 서로 가죽을 벗기지 못해 안달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둘도 없이 절친한 사이로 뿅~하고 나타나는 건 복잡한 이해관계에 따라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되는(혹은 그 반대로 되는) 금배지를 단 양반들의 행각과 뭐 그리 다르겠는가. 모략과 술수가 횡행하기로는 21세기가 아무렴 12~13세기보다 덜하진 않을테고.
그러니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인간들의 권모술수에 넌더리가 날 수 밖에 더 있겠는가. 의도했던 통쾌함은 온데간데 없고 ‘우리 사는 세상은 이러니 계속 이러하리라’라는 넋두리만 남아있는 것이다. 계속 읽다보니 ‘이렇게 더러운 세상에서 살다 그냥 죽는거지 뭐…’라는 자괴감마저(약간 과장하긴 했지만) 들 뻔 했다. 결국 이 책의 문제라기 보단 깨끗하지 않은 현실이 문제인 셈이다.
간간히 그 당시 유행했던(아마도) 문체 -이를테면 ‘아담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류의 끝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름들의 향연- 를 엿볼 수 있어서 약간의 재미를 준 것외에는 나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은 책이었다. 그저 와이드 판 르나르 이야기를 봤다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Tip! <여우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러 동물들이 르나르에게 희생당한다고 슬퍼하지 말 것. 이들은 불사조로 르나르가 잡아먹거나, 심지어 죽은 시체의 살점을 조각내어 소금절이를 해놓아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나 르나르와 절친한 친구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