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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모르는 양념공식 요리법
신미혜 지음 / 세종(세종서적) / 199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때는 바야흐로 내가 중학생 때, 나는 좋아하는 요리인 잡채를 만드려는 엄청난 시도를 하려한다. 그러나 만드는 법을 모르는 관계로 우리집 요리의 대가에게 물어본다.
“ 엄마, 잡채 어떻게 만들어?”
“ 삶은 당면이랑 야채랑 고기 볶은 걸 간장하고 설탕넣고 버무려. 후추도 약간 뿌리고.”
잡채의 기막힌 맛에 비하면 이 얼마나 간단한 요리법인가!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요리를 시작한다. 자, 왕초보 요리사는 당면을 삶은 후 야채들을 썰고 볶아 커다란 볼에 쏟아붙는다.
그러나 왕초보란 단어를 괜히 쓴 것이 아니듯, 그 단어에 걸맞는 결과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당면은 불어터지고 야채들은 당면의 양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며, 그들 또한 풀죽은 모습으로 축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가여워 입에 댈 수 조차 없다.
불쌍한 당면과 고락을 같이 하고픈 마음에 축 쳐진 나를 보고 현장을 목격한 엄마, 뒤에 이어지는 가족들의 잔소리. 넌 왜그리 눈썰미가 없냐, 엄마 만들 때 눈여겨 보지 그랬냐는 둥 혀를 차는 소리가 한 바가지다. 재료들의 양과 적절한 조리시간을 알려줬어야 하지 않냐는 나의 항변은 식사 시간이 늦어져 성난 가족들의 아우성에 흔적도 없이 스러진다.
이상은 나의 요리 실패기 중 하나이다. 가족들은 요리 실패 요인이 나의 눈썰미 부족, 요리감각의 부재라고 매번 각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믿고 체념하며 살던 중 한줄기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엄마도 모르는 양념공식>이라는, 당시로선 특이한 제목의 책을 발견하곤 곧 탐독에 들어갔다. 일단 ‘공식’이라는 말에서 대부분의 요리 고수들이 경시하는 계량을 부각시킨다는 느낌이 들어 반가웠다. 이 바쁜 세상에 언제 눈썰미로 요리를 배우냔 말이다.
이 책에는 제목대로 양념 공식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뿐만 아니라 요리의 기본 조리법과 흔히 해먹는 요리들의 설명도 되어있어 초보자들이 겁내지 않고 요리할 수 있는 자신감을 만들어준다.
또 보통 요리책을 보고 뭘 만들어 먹으려하면 항상 집에 없는 몇 가지 재료들을 구입하러 나가야 하는데 이 책의 천연 양념들이나 요리들은 대부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집에서 편하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생소한 재료 때문에 기죽거나 귀찮게 시장걸음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큰 메리트라고 할 수 있다.
색다르고 특별한 요리를 찾는다면 다른 좋은 요리책들이 많다. 이 책은 그런 귀족적인 맛은 없지만 요리의 기본적인 맛이 들어있어 누구보다도 초보자들에게 도움을 준다.
사실 요즘은 이 책 말고도 친절하게 요리 잘 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많다. 어쩌면 그런 책들에 비해 이 책은 먹음직스런 사진도 없고 특별한 요리가 별로 없어 눈길을 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량해서 요리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풍토에서 정확한 계량을 주장하는 책을 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하고 친절한(특히 초보자들에게) 요리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참, 나에게 이제 잡채 잘 만드냐고 묻는다면, 이젠 눈감고도 만들 수 있는 요리 중 하나라고 대답해 드리겠다. 계랑은 하면서 요리하냐고? 에이~ 눈감고도 만든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