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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ㅣ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뉴엘 베른하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199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까지만 해도 우연히 만나게 되는 모르는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주로 서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대체적으로 그 사람이 보고있는 책이나 풍기는 분위기가 나와 비슷할 때였던 것 같다.
그럴 땐 '같이 식사나 차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상대방에게 의향을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곤 했다. 아,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그저 책 제목처럼 '속 깊은 이성친구' 하나 만들어 서로의 감수성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니까.
어쨌거나 결론을 말하자면 그런 생각을 실행에 옮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거다. 뭐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대충 둘러대자면 내가 다가갔을 때 상대방이 보일 반응- 나를 맛이 살짝 간 사람으로 치부하거나 나의 제의를 성적인 것에 관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에 솜씨있게 대처할 능력이 모자랐고, 결정적으로 이 계획의 수행에 있어서 치명적 결함이라고 할 수 있는 첫인상이 그 제의를 상대방이 흔쾌히 수락할 만큼은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 그 사람이 나의 이런 마음을 감지하고 먼저 다가와준다면 더 이상 좋을 순 없을텐데…
내가 이렇게 구구절절 얘기를 늘어놓은 것은 바로 <금요일 저녁>이라는 소설에서 나의 희망이 현실로 펼쳐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단지 이들의 만남이 서점이 아니라 도로에서 이루어지며 육체적인 교감으로 진행된다는 것이 좀 다르지만.
어느 금요일 저녁, 주인공 로르는 교통체증으로 자가용과 함께 기어가던 중 프레드릭이라는 남자를 옆 자리에 태우게 된다. 로르는 프레드릭의 향수와 담배, 그리고 가죽 점퍼의 혼합된 냄새와 독특한 분위기에 이끌려 그날 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작가는 로르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로르와 프레드릭의 행동에 어떤 해석도 내비치지 않는데, 그런 점이 읽는 사람에게 여러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그들의 만남부터 헤어짐까지가 모두 프레드릭의 계획된 수순에 따른 것이었는지, 아님 순수하게 그저 우연에 의한 만남과 감정의 이끌림에 따른 것인지에서부터 여러가지 등등…
이 소설은 무척 술술 읽히는데, 짧은 분량도 분량이지만 작가가 주인공의 심리묘사나 정황을 매끄럽게 풀어나가기 때문에 마치 새우깡을 먹을 때 처럼 읽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된다.
개인적으론 <금요일 저녁>의 다른 버전, 그러니까 프레드릭의 관점에서 보는 금요일 저녁의 이야기가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