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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빌리아 이발사의 모자 - 개정판
이재호 지음 / CPN(씨피엔) / 2020년 5월
평점 :
처음 제목을 봤을 땐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떠오른다.
하지만 책 내용을 읽다보면 그것과는 무관하게 이발소 주인이 왜 세빌리아 이발사로 통칭되어 불리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만화 <검정 고무신>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읽으면서 더욱 정감이 갔다.
주인공 대성이는 '참댕이 대갈통'으로 불리는 소년이다. 머리에 늘 기름기가 잔뜩 끼어있는 자신의 머릿통을 그 누구보다 싫어하지만 한여름철 밤중에 남의 밭에 들어가 서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다. 그래서 밤마다 친구들과 수박, 참외 등을 서리하러 밭에 들어가지만 주인은 단박에 그를 알아본다. 기름진 그의 참댕이 머리가 달빛에 비쳐 금세 들통나기 때문이다.
세빌리아 이발사는 청년시절 전쟁에 참여했다가 부상을 당하고 정신까지 온전치 못하다. 늘 목발을 짚고 다녀 '세발이'이발사에서 '세빌리아 이발사'로 불린다. 대성이는 이상하게도 늘 무뚝뚝하고 히스테릭한 세빌리아 이발사에게 연민을 품고 그를 걱정한다. 그래서 세빌리아 이발사가 언덕에 올라 우뚝 솟은 전나무를 목발로 사정없이 때리는 모습, 흰도화지에 물감도 묻히지 않은 붓을 들고 마치 허공에 대고 그림을 그리듯 몰두해 있는 모습 등을 보면서 '크레이지 이발사, 미친 이발사'라고 고개를 젓다가도 그가 대체 왜 이런 행동들을 하는지 그 연유를 궁금해하곤 한다.
대성이에게 '모자'는 뜨거운 땡볕 아래에 머릿속의 열기를 식히기 위한 단순한 도구였다면 세빌리아 이발사에게 '모자'는 옛 연인을 그리고 기억하기 위한 추억의 물건이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게는 별의미없는 단순 도구나 물품이 또 다른 이에겐 그것을 통해 추억을 곱씹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리는 중요한 물건이 되듯이. 마지막까지 웃음과 감동이 절묘히 퍼져나가 옛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세빌리아 이발사의 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