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김봉곤 작가의 소설집 중 수록된 작품 <엔드 게임>을 만났다.

처음 이 가제본을 받았을 때 <엔드 게임>이란 단어를 보고 연상된 건 '이별'이었다.

'엔드'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나에겐 관계의 종료를 의미했고 그 예상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사랑은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남녀간의 사랑, 동성간의 사랑, 부모 자식간의 사랑, 사제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등.

그것의 특성과 색깔, 농도의 짙음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 작품의 사랑은 동성간의 사랑.

그래서 솔직히 처음엔 작품에 몰입이 되질 않아 애먹었다.

 

남녀간의 사랑이든 동성간의 사랑이든 젠더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색안경을 끼지 않고 존중되어야 마땅한데, 내가 아직 그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남일처럼 느껴지는 것인지 작품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에게 미안함을 느낄 정도로 그들의 사랑과 이별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렇다고 철저히 거부를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익숙치 않은 것에 낯섦을 느껴 익숙해지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했을 뿐.

 

그 낯섦을 깨고 어느새 작품에 녹아들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필력 때문이리.

김봉곤 작가의 이전 작품을 그리고 <시절과 기분>을 온전히 읽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 작품 <엔드 게임>만 보더라도 얼마나 감성이 돋보이는지 십분 알 수 있을 것이다.

 

<엔드 게임>은 5년간 사귄 주인공 '나'와 '형섭'이 사랑의 끝에서 각자의 길로 돌아선다. 하지만 이들은 이내 친구처럼 서로 언제 사랑했다 헤어졌냐는 듯 가끔씩 안부를 묻고, 옷을 고를 때 조언을 구하고, 각자 사는 지역으로 업무차 방문을 하면 함께 시간을 보낸 등 그렇게 관계를 이어나간다. 작가인 '나'는 작품 속에 형섭을 담아낸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에 실명으로 담는다는게 나로선 조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이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처럼. 그것이 적의를 바탕으로 쓴 것은 아닐지라도. '형섭'은 전혀 게의치 않았지만.

 

그 속엔 더이상 서로에 대한 미련이나 연인 관계를 다시 이어나갈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뭐랄까. 그동안 함께 살아온 시간을 바탕으로 동지애, 우정, 연민의식 정도만 남았달까. 절절한 애정과 미련, 후회와 회환이 없어 담백해서 좋았다. 헤어진 연인의 관계가 깨지고 나면 둘 중 하나다. 남이 되거나 적이 되거나. 그 공식을 보란듯이 깨기라도 하듯 이들은 우정 아닌 우정으로 남은 듯 하다.

 

이후 이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가끔은 조언도 해주고 서로 다른 연인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 건투를 빌어줄 수 있는 사이로 남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비단 그것이 남녀간이든 동성간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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