탬버린 - 김유담 소설집
김유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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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이후 사년간 발표한 소설을 추려낸 김유담 작가의 소설집 <탬버린>이 출간됐다.

핀 캐리, 공설운동장, 우리가 이웃하던 시간이 지나고, 탬버린, 멀고도 가까운, 가져도 되는, 두고두고 후회, 영국산 찻잔이 있는 집 등 총 8편이 수록되어 있고 그 외에 작품의 해설집과 작가의 말이 담겨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을 꼽자면 <핀 캐리>와 <탬버린>이다.

이 중 내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해준 여운이 남는 작품은 바로 <탬버린>.

 

일단 책과 마주했을 때의 첫 느낌은 산뜻했다. 표지부터 강렬하다.

밝고 경쾌함이 물씬 느껴지는 샛노란 배경에 반쪽짜리 탬버린.

흔히 노래를 부를 때 흥을 돋우는, 동그랗게 생긴 것이 손에 쥐기 좋고 징글이 박혀 짤랑거리는, 발라드를 제외하곤 왠지 노래와 반주에 곁들어줘야 분위기가 한층 더 무르익을 것 같은 노래방의 꽃, 탬버린.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첫 장을 넘기기 전의 기대감과 예상은 빗나가 버렸다.

 

주인공 고등학생 '은수'는 서울에 살다 지방 소도시로 전학을 오고 그 곳에서 새 친구 '송'을 만난다. '송'은 탬버린 매니아로 친구들이 학교에 남아 야간자율학습시간에 공부할 때, '송'은 하교와 동시에 노래방으로 달려가 6시 반까지만 노래를 부르고 나온다. 그러고는 7시부터 11시까지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늘 좁디 좁은 오락실 코인노래방에서만 노래부르다 은수와 만난 후로는 노래방의 번듯한 룸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 '송'은 이렇게 말한다.

 

방을 가진다는 건 말이야, 좀더 특별한 대우를 받는거라고 나는 생각해.

고깃집에서도 룸으로 안내받으려면 인원이 어느정도 되거나 비싼 메뉴를 시켜 먹어야 하거든.

설렁탕이나 갈비탕만 먹는 사람들은 룸이 아니라 홀에 앉아야 하는 거라고.  (P128)

 

이 장면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린 나이에 친구들은 학교라는 울타리에 남아 공부를 하든 잠을 자든 자율학습시간을 때우고 있지만, '송'에게는 그것도 사치다. 가정형편이 어떤지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지만 하교 후 밤 늦은 시간까지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는 소녀. 한창 공부에 매진해야 할 시기에 그녀가 세상 밖으로 나와 분주한 고깃집 주방에서 정신없이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때 '송'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아니 어쩌면 너무 바빠서 걱정이라는 것조차 할 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방'은 특권이자 삶의 고난으로부터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탈출구였을거란 생각이 든다.

 

'송'에게 탬버린은 노래방에서 흥을 돋우는 요소가 아닌 일종의 '한'을 승화시키려는 도구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배우고 싶어했지만 녹록지 못한 현실은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자꾸 세상으로 내몰았다. 성인이 되어서 '은수'는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여 작은 광고회사에 취업하게 됐고, '송'은 등산복 매장, 화장품 매장 등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어느 날은 돈을 모아 대학을 갈 거라고 했다가, 장사를 할 거라고 했다가, 그림, 네일아트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가, 미용학원을 등록할거라는 등 계획만 시시때때로 바뀌었다. 정작 소망과는 상관없는 현실이 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수'는 '송'이 그토록 원했던 미술분야로 대학도 가고 회사도 다니게 되니 '송'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둘의 공유거리는 점점 줄어들고 연락도 어느 새 끊겨버린다.

 

나는 이 장면에서 나를 비롯한 지난 날 꿈많고 이상으로 가득했던 우리들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엔 세상과는 조금 동떨어져 하고픈 일도 많았고 죽어라 하기 싫던 공부만 해야 했는데 어느 덧 인생을 책임질 나이가 되어보니 그 모든게 일장춘몽처럼 아련하고 허무함이 감도는 기분이라니. 각자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 이제는 추억으로나마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게 우리네의 현실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은수'가 다니는 회사의 대표는 직원들의 회식장소로 노래방을 선호한다. 그는 회사 직원들이 노래를 부르고 100점을 맞으면 팁으로 5만원씩 건네준다. 직원들은 앞다투어 노래를 부르고 '은수'는 회식 자리에서 탬버린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지만 점수가 100점을 채 채우지 못하고 급기야 99점을 맞게 된다. 99점이나 100점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다른 직원의 말에 대표는 싸늘하게 말한다.

 

99점과 100점은 엄연히 다릅니다.

그건 신입사원뿐 아니라 여기 있는 직원들 모두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는 더더욱 명심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P147)

 

이 사회에서는 노력보다는 결과만이 우선이 되는 듯 하다. 일각에선 최고보다는 최선을,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사회는 아직도 결과, 성과만을 중시하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많다. 비단 이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네 현실이 그러하다.

 

김유담 작가의 소설은 현실의 피폐함, 인간의 모순, 현실의 굴레가 뒤엉켜 여러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군더더기 없이 보여줘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들을 끌어낸다. 그래서 나는 이제라도 '김유담'이라는 작가를 알게 됨에 감사한다. 삶의 징글맞음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내심 궁금함을 뒤로 하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

 

탬버린에 달린 이 동그란 금속을 뭐라고 하는 줄 아니? 징글(jingle)이라고 해.

얘의 이름을 알고부터는 말이야, 탬버린을 흔들 때마다 징글징글징글,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는 그 소리가 좋아. 나만 징글징글하게 사는 게 아닌 것 같아서.

어때? 너도 들리니?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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