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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치유, 아직 만나지 못한 나를 만나다
윤인모 지음 / 판미동 / 2017년 6월
평점 :
그는 절망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자기가 올라갈 수 없는 저 위 구멍 쪽을 바라보며 한줄기 구원의 빛이 자신에게 내리쬐기를 기다려 본다. 막연하다. 그것 이외에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서 그저 작은 희망의 끈을 만지작거린다. 빠져나올 수 없는 어둠의 공동에 갇힌 채 어딘가에서 내려올지도 모를 빛을 막연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 그것이 김귀남의 내면 풍경이었다. 대체로 일 중독에 빠져 사는 사람의 절망스런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135쪽)
커다란 회의실에 단둘이 남겨지자, 이제껏 걸어온 그의 삶의 여정과 관련된 이런저런 풍경들이 나타났단다. 그가 읽어낸 풍경 속에는 버려진 집처럼 스산한 그의 내부 세계가 있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며 격식을 차리고 있는 그의 태도는 한편으로는 '당신의 얘기에 사실 크게 관심은 없어요'하고 말하는 듯하지만, 그럼에도 다 보이고 다 읽힌다.
이 책 <트라우마 치유, 아직 만나지 못한 나를 만나다>는 명상 치유 요법, 에너지 테라피, 차크라 리딩 등을 통해 우울증, 정서불안, 자살충동 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치유해온 윤인모씨의 일종의 사례집이다. 400여 쪽의 두툼한 볼륨 사이사이로 꽤 많은 내담자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그는 차크라 리딩을 통해서 내담자의 무의식 풍경들이나 꿈의 세계를 보았고, 마음의 감정 층을 들여다봤다. 뿐만 아니다. 때로는 전생도 보았고, 때로는 죽은 자들의 영혼이나 유령, 귀신도 보았다. 다양한 그림들과 정서들이 시대를 넘나들며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로 이어진다. 읽다 보면, 정말 이게 내담자의 풍경인가 싶다. 이쯤 되면 상담자의 소설 아닐까, 하고.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린다. 맞다고. 그게 나라고.
명상 과학에서는 몸, 마음, 감정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여러 정보와 에너지를 매개하고 총괄하는 생명 에너지 센터들을 차크라라고 한단다. 그러므로 차크라 리딩이란, 인간의 무의식 혹은 심층 지식의 저장고와 그 풍경들의 성분을 음미하고 투과하면서 내 삶과 인격의 근간을 이루는 차크라 에너지 체계를 점검하고 탐구하는 과정인 셈. 하지만 아무래도 와 닿지 않는다. 상담자가 내담자가 쏟아낸 감정의 찌꺼기에 숨 막혀할 때도, 내담자가 엉엉 울며 소리 지를 때도- 독자인 나는 멀뚱히 책 밖에 서 있을 뿐이다. 명상이란 모름지기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가능할 텐데, 차크라니, 에너지 테라피니 전생이니 하는 것들이 내게는 허상처럼 느껴지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리하야,
나는 아직 '만나지 못한 나'를 만나지 못했다.
내가 가진 휘황찬란한 보석과 꽃, 또 처참하기 그지없는 나의 악몽들과 상처들을 보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아졌으나- 이 책을 통해서는 만날 수 없었다. 그 점이 재미있었고, 또 그 점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