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그가 직접 '책을 어떻게 읽는지' 혹은 책을 어떻게 사랑해왔는지 자신의 독서습관을 되짚어가며 직접 서술한 것이고, 2부는 작가이자 <씨네 21> 기자인 이다혜 씨와의 대담을 통해 '읽기'를 말한 것이다. 3부는 어쩌면 이 책의 하이라이트일지 모를, 이동진만의 추천도서 500권이다. 소설과 시 외에는 분야보다는 그 책들이 담고 있는 주제나 문제의식으로 구분했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소설 목록 속에 이렇다 할 고전들을 모두 제외시켰다는 점도 '이동진스러웠다'. (한국 소설은 80년대 이후, 외국 소설은 60년대 이후의 것들로 추천되어 있어요)
글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탓에 술술 넘어가는 책장을 의식적으로 닫는다. 그리고 나의 독서 경험을 되짚어보고, 고민하고 반성한다. 나의 '독서력'은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을까. 그러다가 그도 나와 같은 독서습관을 가졌음에 묘한 희열도 느껴본다. 괜히 밑줄 치고 맞아맞아, 나도 나도! 하며 맞장구도 친다. 영화가 아니면 아무것도 몰랐던 지난날의 나와 극장보다 서점에 더 많이 가는 오늘의 내가 '이동진'이라는 매개를 통해 만난다. 그런 점에서 특히 2부의 대담이 좋았다.
그리고 (내게) 날카로웠던 문장들.
많은 사람들이 전문성을 이야기하고 그 중요성도 높아집니다. 전문성이란 깊이를 갖추는 것이겠죠. 그런데 깊이의 전제는 넓이입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아요. 넓이의 전제가 깊이는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깊이가 전문성이라면 넓이는 교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적인 영역에서 교양을 갖추지 않는다면 전문성도 가질 수 없죠. 사람들은 대체로 깊어지라고만 이야기하는데, 깊이를 갖추기 위한 넓이를 너무 등한시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국경과 시간적 제약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현대에는 넓이에 주목하는 게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넓이를 갖추는 데 굉장히 적합한 활동이 바로 독서입니다. (27쪽)
그의 목록을 뜯어본다. 이미 읽은 책을 표시하면서,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읽으려고 사 둔 책도 따로 표시해두었다. 읽은 책의 공통된 감각을 떠올려, 읽지 않은 책을 유추해본다. 읽어보고 싶은 책이 잔뜩이다. 그런데 어느 부분에서는 읽은 책도, 읽으려고 사둔 책도 없다. '언어와 일상', '역사의 그 순간', '우주와 자연', '죽음이라는 수수께끼'가 그렇다. 나의 넓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그래도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뭐, 언젠가 넓어지겠지.
어쨌거나 독서는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하는 것만이 정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