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1
케빈 콴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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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이야기는 흔하다면 (엄청) 흔하다. 열심히 노력해 겨우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생각한 (다소 평범한) 남자친구가 사실은 미치도록 부자였다는 것. 그의 가장 친한 친구는 유명 연예인, 정치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가 주목하는) 세기의 결혼식의 주인공이고, 그의 할머니는 네비게이션에도 찍히지 않는 비밀스러운 대저택에 살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그녀의 저택은 여기가 정말 싱가포르인지, 2018년은 맞는지 의심하게 한다. 그렇게 레이첼은 눈 깜빡할 사이 닉의 세상 속으로, 그러니까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세상 속으로 뛰어든다.

 

고급 호텔이나 리조트를 소유하고 있는 것, 친구들과의 파티에 전세기를 타고 움직이는 것 정도야 너무 당연해서 놀라는 게 민망할 정도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먹고, 자고, 입고, 쓰는 것 모두) 그들만을 위해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평범하게 살아온(그들의 시선으로는 삶을 겨우 버텨온) 레이첼에게 닉의 세상은 혼돈일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두 팔 벌려 환영해줘도 혼란스러울진대, 질투하고 시기하고- 그들의 관계를 반대하는 이들까지 있으니 그럴 수밖에.) 겉으로는 그녀를 보고 활짝 웃었지만, 속으로는 "쟤는 어디서 온 애야?", "어느 집안이야?", "꽃뱀은 아니고?"하는 비아냥거림이 들끓었다. 당연히 레이첼에게도 들렸다.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그래도 꽤 괜찮은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의 비아냥은 그녀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이룰 수도 가꿀 수도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레이첼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동시에,
그들이 그들 자신을 위해 했던, 아이들을 위해 했던 결정이 얼마나 옳았던가를 확인한다. 어휴, 하마터면 저렇게 될 뻔했지 뭐야- 우리는 정말 다행이지, 하는 이상한 방식의 안도다.

 

 800여 페이지의 볼륨이 순간적으로 나를 압도해왔음에도 몇 시간 만에 다 읽어버렸다. 그만큼 흥미진진했고, 쉽게 읽혔다(신데렐라 스토리에 대한 기시감은 어쩔 수 없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가, 오직 싱가포르에서만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수십 개의 메뉴들이(싱가포르 여행이 자꾸 떠올랐다), (아마도 평생 내 눈으로는 마주할 일이 없을) 전 세계 0.01%의 상류층의 여유와 화려함이 뭔가 계속해서 나를 들뜨게 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가볍고 유쾌한 로맨스를 읽었다.
이런 이야기라면, 언제 어디에서건 사랑받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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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 영원한 내부고발자의 고백
신평 지음 / 새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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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누군가 말해야 할 때, '사법 독립'과 '사법 불신'
이라고 거창하게 써놓고, 한참이나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만 봤다. 어떤 문장으로 글을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법도, 법원도 잘 모른다. 하지만 사법부가 고인 물이라는 데는 확실히 동의한다. 사실 사법부가 흐르는 물인 것도 이상하다. 그들은 어느 정도 사회와 유리되어, 보호되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이 책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는 전 경북대 로스쿨 교수였던 신평의 내부고발 일지다. 일기 형식으로 쓰여있어 그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지만(때로 필요 이상으로 주관적이고, 감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부분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그 어느 사건보다 면밀히 살펴볼 수 있기도 했다.

사실 그는 1993년 사법부에서 돈 봉투가 오간다고 주장하며 '사법부 정풍'을 요구했던 자다. 그 때문에 최초로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책에 쓰인 사건은 로스쿨 안에서의 교수들의 부정행위에 대한 고발이었다. 함께 중국 출장을 갔던 동료 교수가 성매매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경북대 총장의 부당인사에 맞서 학내 홈페이지 게시판에 비판글을 올렸다. 이는 명예훼손 혐의 기소로 이어졌다.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내려졌지만 항소심은 첫 공판 준비기일에 결심(검사 구형 및 피고인 최후변론 절차 등을 밟는 심리)을 하고 곧바로 벌금 500만 원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신평 교수가 낸 증인 신청은 모두 기각됐다. 대법원은 아무런 이유 없이 1년 8개월간 심리를 하지 않다가 신평 교수가 유력한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자 갑자기 주심 재판관을 바꾸고 곧바로 ‘상고기각’ 판결을 내렸다. 벌금 500만 원 유죄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신평 교수는 대법원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을 한 것으로 해석했다.

 

 

내부고발들은 (거의) 언제나 실패하고, 조직은 잔인한 보복을 가한다. (으레 모두 재임명되는 형식적인 절차였음에도) 법관 재임명에서 탈락하고 법조계의 많은 인사로부터 모멸의 취급을 받았던 그는 이제 동료 교수들 사이에서도 차가운 시선에 몸을 움츠린다. 더 이상 학생들 앞에 설 수 없다고 썼다. 어쩐지 그 마지막은 조금 안쓰러웠다. 하지만 읽는 동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간절함(설마, 법원이 그럴 리가 없어...라든지)이나 정의의 부재에 대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외려 한 가정의 가장이 고독한 싸움을 해나가는 과정 정도라면 모를까. (게다가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려니, 생각하는 신앙인의 태도 역시 책의 주제와 엇나가는 부분 아닐까, 생각했다.)


+
외롭던 법정 싸움보다, 로스쿨에 대한 입장들이 눈에 더 띄었던 것은 나뿐일까. 로스쿨이 문제라고 전해만 들었지 그 안에 어떤 문제들이 숨어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그가 집어주는 로스쿨의 문제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독일이나 프랑스, 일본의 사례를 가지고 와 우리나라의 로스쿨에서 어떤 점들을 개혁해야 하는지 집어주는 부분도 좋았고, "졸업 후 변호사시험을 합격해도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나온 소수의 학생과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로스쿨 학생들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본문 중에서, 236쪽)"라고 사이다 발언을 해 준 것도 반가웠다. (그 문장 덕분에 그의 다른 의견들에도 더 깊이 동의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
그래도 어쩐지, 이 이야기는 일기 형식을 취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인간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정의를 짓밟는다. 양심의 소리를 막는다. 순진을 가장한 교활한 웃음을 띤다. 세상은 어차피 그런 것이라고 비아냥거린다. 아,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본문 중에서,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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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꾸는 나라 지혜의 시대
노회찬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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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를 잘 몰랐다. 진보 정당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다, 정의당 원내대표를 지낸 적이 있다, 경남 창원이 지역구다. 그 정도. 그래서 그의 마지막 소식에 놀라기는 했으나 하늘이 무너질 듯 슬프지는 않았다. 그랬는데, 이 책을 읽고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그를 추도했다. 노란 표지의 책에 손을 얹고 잠깐 목례하는 사이에 눈물이 났다. 우선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87민주화 항쟁 이후, 대한민국은 표면적인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실질적인 민주주의로는 아직도 가는 중이다. 한동안 그것을 잊고 살다가 국정 농단 사태를 마주하면서 깨닫게 되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조기 대선을 성공적으로 치른 후에 또 한동안 잊고 살았다. 그랬던 것을 이 책을 계기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아직, 우리가 갈 길이 멀다고. 아직, 가는 중이라고.

 

이 책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지난 2월 창비가 주관한 '지혜의 시대' 연속 특강을 텍스트로 정리한 것이다. 강연록이기에 술술 읽힌 것은 물론이고, 이미 고인이 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어서 나로서는 다행스럽기까지 했다. 중간중간 강연 중인 그의 사진이 실려 현장감을 살려주었다.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 손끝에는 힘이 실려있고, 어깨는 편안하게 늘어트렸지만 허리는 꼿꼿이 세우고 앉은 자세에서 그가 어떤 사람이었던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위트가 있었다. 예컨대, 이런 표현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모두 두 시대를 거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촛불 이전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영어로는 서력기원전을 비포 크라이스트(Before Christ), BC라고 쓰는데, 촛불 이전 시대는 '비포 캔들'(before candle)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본문 중에서, 20쪽)

 

 촛불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변곡점이 되어주었던지를 이렇게 위트 있게 표현했다. 너무 신선해서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히지 않을 이야기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기원전에 태어났지만 기원후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촛불 이후의 시대, 앞으로 잘 가꾸어서 지속해야 할 시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시대, 우리는 모두 시대적 전환기를 살고 있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것은 당연하고 뻔한 말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촛불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라는 말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촛불 이후에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할지, 어떤 것이 문제일지, 지금 당장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무엇까지를 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그의 강연은 시원시원했다. "촛불 이후 시대인 오늘날의 중요한 과제는 공정, 평등, 평화를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는 것입니다.(본문 중에서, 86쪽)"라고 문제를 정확히 제시했고, 사법제도의 문제, 국회의 문제, 노동 문제, 교육 문제, 북한 문제 등 굵직한 카테고리들의 핵심을 쏙쏙 집어 설명했다. 비정규직보다 파견직을 먼저 줄여나가야 한다는 데 동의했고, 국공립대학교의 학사 시스템을 통합해 대학 서열화를 깨버리는 것은 센세이셔널한 해법으로 들렸다.

사실 일상을 지내면서 정치에, 사회 문제에 관심 갖기가 쉽지 않다. 당장 오늘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이미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에, 사회에 관심 갖지 않으면 그것은 어느 틈엔가 충치가 되어 나를 괴롭히고들 것이다. 작은 관심을 지속적으로 주는 것. 시스템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지켜봐 주고 함께 목소리 내는 것. 우리가 이 나라 주인이기에, 꼭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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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중력 - 사소하지만 소중했고 소중하지만 보내야 했던 것들에 대하여
이숙명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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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턴가, 핸드폰이 이상했다. 다른 기능은 다 멀쩡한데, 전화가 오면 벨이 울리지 않고 부재중 전화 목록으로 남았다. 재택근무자에게 전화 기능은 밥줄이나 다름없어서, 전화기를 얼른 바꿔야겠다 싶었다. (그러고 보니 대체 몇 번째 아이폰인지 모르겠다. 나는 꽤 오랫동안 아이폰만 써왔다. 한동안은 새로운 버전의 아이폰이 나오면 바로바로 새 기기로 갈아탈 만큼 충성도도 높았다. 하지만 이제 익숙해서 쓴다. 유료로 결제한 어플이 너무 많아 버릴 수 없기도 하고;ㅁ;...) 핸드폰을 바꿔야지, 생각하니 그간 눈에 들어오지 않던 아이폰x가 눈에 확 들어왔다. 곧 출시된다는 아이폰xs의 기능도 괜히 한번 살펴봤다. 그러다 에이, 뭐 됐어-하는 마음으로 아이폰7을 아주 저렴한 값에 샀다. 요금에 기기 할부금을 얹지 않고 일시불로 기기를 사는 기분은 왠지 좀 이상했다. 어쨌거나,

최신 기기가 아닌 출시된 지 한참이나 지난 기기를 선택한 내가 낯설었다. 얼리어답터까지는 아니지만, 내게는 기계에 대한 물욕이 있다. 궁금하면 꼭 써봐야 하는 성격이라 90년대 후반 마이마이부터, 2000년 32Mb 짜리 목걸이형 mp3, 소니 cd플레이어, pmp, 민트패드, 넷북 등등의 온갖 기계들을 써봤더랬다. 물론 지금도 갖고 싶은 기계들이 꽤 있다. 하지만 그것을 들인다 한들, 지금의 내 라이프스타일에서 그것들이 빛나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 그럭저럭 참아진다.

키득키득하며 <사물의 중력>을 읽었다. 군데 군데서 배어 나오는 저자의 위트가 귀엽다 생각되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내 얘기 같기도 해서 재미있었다. 기계와 관련한 부분에서 그랬고, 책에 깔려 죽을지 모른다 했던 부분에서 그랬다. 만약 27인치 트렁크 하나에 내 삶을 몽땅 집어넣어야 한다면, 무엇을 넣고 무엇을 빼게 될지도 생각해보았다. "이 책들은 그냥 여기에 꽂혀있는 것만으로도 빛이 난다고!" 큰소리쳤던 책들 중 몇 권이나 트렁크에 넣게 될까. 데스크탑은 너무 크고, 노트북은 너무 오래되었으니 이참에 가볍고 성능 좋은 노트북을 하나 사야겠다,라고도 생각했다. 노트를 펼쳐 꼭 챙겨야 할 물건들의 리스트를 적고 있자니, 내게 꼭 필요한 물건들은 의외로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예컨대 노트, 열두 색 색연필, 연필깎이, 손톱깎이, 치간칫솔과 치실, USB 같은 것.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이제 새 물건을 사는 일은 그만두고 싶다. 집에 너무 많은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고, 뭐하나 더 팔거나 나눔 하거나 버릴 것은 없는지 살피게 된다. 미니멀리즘까지는 아니어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건 구할 수 있는 요즘 같은 세상에 굳이 이것저것 쌓아놓고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 온 가족의 옷을 한가득 버렸다. 이사 전후로 한번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또 버릴 것들이 한가득 나왔다. 그동안 우리는 대체 얼마나 많은 쓰레기와 함께 살고 있었던지;ㅁ;.... 이렇게 한가득 버릴 때마다 생각하는 것은, 분명 많이 버렸는데 옷은 늘어난 느낌이란 거다. (책도 마찬가지'ㅅ'...) 정말이지 아이러니한 비움의 세계다.

 

뭔가를 잃는다는 것, 놓는다는 것, 떠나보낸다는 것은 사실 그리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삶은 고여 있을 때보다 흘러갈 때 훨씬 건강하다. (본문 중에서, 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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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정석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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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카뮈의 <이방인>을 다시 읽었다. 잘 읽히지 않았던,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던 뫼르소의 행동들이 점차 선명해져 오는 느낌이었다.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던 그가 사실은 이방인이 아니었다는 데 흠칫 놀랐다. <이방인>을 재독하면서, 그것이 잘 읽힌 이유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여러 번 재독했기 때문인지, 그간 내 스스로가 많이 성장했기 때문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아마 셋 다일 테지만- 이 책 <번역의 정석>을 읽으면서 '번역'의 중요성, 그것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 <번역의 정석>에는 번역에 대한 아카데믹한 정의는 없지만, 그보다 더 깊고 진한 '번역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그것은 아마도 번역을 하면서 저자가 겪었던 숱한 논쟁들의 산물일 것이다. 그 논쟁의 장면들을-질문과 대답이 날카롭게 오가는 장면들을- 엿보면서 우리는 어렴풋하게나마 번역이 무엇인지, 번역을 할 때 번역자가 취해야 할 태도란 어떤 것인지 가늠해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명쾌한 해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내게도 번역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게 주어진 원고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였는데, 그 누구도 하기 싫어했던(귀찮아했던) 작업을 팀의 막내인 내가 도맡게 된 것이었다. 유아용 애니메이션 시나리오가 어려우면 또 얼마나 어렵겠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워드 파일로 100매쯤 되는 원고를 번역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저 원문을 주욱 읽어나가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번역을 얘기할 때 '출발어'와 '도착어'가 대응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주로 쓰는데- 진짜 그랬다. 1:1 대응이 안된다 생각될 때가 많았고, 그럴 때면 손쉽게 문장을 끊어 쓰거나 내가 이해한 말로 문장을 만들어 썼다. (때로는 그렇게 만들어 쓴 문장이 더 멋지다 생각되기도 했다. 물론 내 스스로;ㅁ;...) 그런데 그러다 보니, 전체를 읽었을 때 이야기의 흐름이 맞지 않았다. 캐릭터에 일관성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밋밋하고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내가 읽어도 그랬다. 원문과 너무 달랐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해서, 그때의 경험으로- 저자가 말하는 '직역'이, 쉼표 하나까지 그대로 옮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의역이 직역보다 쉽다,라는 말 역시 무엇인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그 말을 자신 있게 뱉을 수 있는 그의 번역에 믿음이 생긴다. 적어도 그는 소설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앞뒤 문맥 속에서 한 문장의 진짜 의미를 옮기려고 했음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시 읽은 <이방인>이 다르게 읽혔던 것이 번역 때문이라면, <노인과 바다> <어린 왕자> <위대한 개츠비>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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