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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정석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최근에 카뮈의 <이방인>을 다시 읽었다. 잘 읽히지 않았던,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던 뫼르소의 행동들이 점차 선명해져 오는 느낌이었다.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던 그가 사실은 이방인이 아니었다는 데 흠칫 놀랐다. <이방인>을 재독하면서, 그것이 잘 읽힌 이유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여러 번 재독했기 때문인지, 그간 내 스스로가 많이 성장했기 때문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아마 셋 다일 테지만- 이 책 <번역의 정석>을 읽으면서 '번역'의 중요성, 그것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 <번역의 정석>에는 번역에 대한 아카데믹한 정의는 없지만, 그보다 더 깊고 진한 '번역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그것은 아마도 번역을 하면서 저자가 겪었던 숱한 논쟁들의 산물일 것이다. 그 논쟁의 장면들을-질문과 대답이 날카롭게 오가는 장면들을- 엿보면서 우리는 어렴풋하게나마 번역이 무엇인지, 번역을 할 때 번역자가 취해야 할 태도란 어떤 것인지 가늠해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명쾌한 해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내게도 번역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게 주어진 원고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였는데, 그 누구도 하기 싫어했던(귀찮아했던) 작업을 팀의 막내인 내가 도맡게 된 것이었다. 유아용 애니메이션 시나리오가 어려우면 또 얼마나 어렵겠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워드 파일로 100매쯤 되는 원고를 번역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저 원문을 주욱 읽어나가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번역을 얘기할 때 '출발어'와 '도착어'가 대응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주로 쓰는데- 진짜 그랬다. 1:1 대응이 안된다 생각될 때가 많았고, 그럴 때면 손쉽게 문장을 끊어 쓰거나 내가 이해한 말로 문장을 만들어 썼다. (때로는 그렇게 만들어 쓴 문장이 더 멋지다 생각되기도 했다. 물론 내 스스로;ㅁ;...) 그런데 그러다 보니, 전체를 읽었을 때 이야기의 흐름이 맞지 않았다. 캐릭터에 일관성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밋밋하고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내가 읽어도 그랬다. 원문과 너무 달랐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해서, 그때의 경험으로- 저자가 말하는 '직역'이, 쉼표 하나까지 그대로 옮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의역이 직역보다 쉽다,라는 말 역시 무엇인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그 말을 자신 있게 뱉을 수 있는 그의 번역에 믿음이 생긴다. 적어도 그는 소설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앞뒤 문맥 속에서 한 문장의 진짜 의미를 옮기려고 했음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시 읽은 <이방인>이 다르게 읽혔던 것이 번역 때문이라면, <노인과 바다> <어린 왕자> <위대한 개츠비>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개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