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꿈꾸는 나라 지혜의 시대
노회찬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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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를 잘 몰랐다. 진보 정당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다, 정의당 원내대표를 지낸 적이 있다, 경남 창원이 지역구다. 그 정도. 그래서 그의 마지막 소식에 놀라기는 했으나 하늘이 무너질 듯 슬프지는 않았다. 그랬는데, 이 책을 읽고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그를 추도했다. 노란 표지의 책에 손을 얹고 잠깐 목례하는 사이에 눈물이 났다. 우선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87민주화 항쟁 이후, 대한민국은 표면적인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실질적인 민주주의로는 아직도 가는 중이다. 한동안 그것을 잊고 살다가 국정 농단 사태를 마주하면서 깨닫게 되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조기 대선을 성공적으로 치른 후에 또 한동안 잊고 살았다. 그랬던 것을 이 책을 계기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아직, 우리가 갈 길이 멀다고. 아직, 가는 중이라고.

 

이 책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지난 2월 창비가 주관한 '지혜의 시대' 연속 특강을 텍스트로 정리한 것이다. 강연록이기에 술술 읽힌 것은 물론이고, 이미 고인이 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어서 나로서는 다행스럽기까지 했다. 중간중간 강연 중인 그의 사진이 실려 현장감을 살려주었다.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 손끝에는 힘이 실려있고, 어깨는 편안하게 늘어트렸지만 허리는 꼿꼿이 세우고 앉은 자세에서 그가 어떤 사람이었던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위트가 있었다. 예컨대, 이런 표현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모두 두 시대를 거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촛불 이전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영어로는 서력기원전을 비포 크라이스트(Before Christ), BC라고 쓰는데, 촛불 이전 시대는 '비포 캔들'(before candle)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본문 중에서, 20쪽)

 

 촛불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변곡점이 되어주었던지를 이렇게 위트 있게 표현했다. 너무 신선해서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히지 않을 이야기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기원전에 태어났지만 기원후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촛불 이후의 시대, 앞으로 잘 가꾸어서 지속해야 할 시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시대, 우리는 모두 시대적 전환기를 살고 있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것은 당연하고 뻔한 말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촛불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라는 말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촛불 이후에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할지, 어떤 것이 문제일지, 지금 당장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무엇까지를 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그의 강연은 시원시원했다. "촛불 이후 시대인 오늘날의 중요한 과제는 공정, 평등, 평화를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는 것입니다.(본문 중에서, 86쪽)"라고 문제를 정확히 제시했고, 사법제도의 문제, 국회의 문제, 노동 문제, 교육 문제, 북한 문제 등 굵직한 카테고리들의 핵심을 쏙쏙 집어 설명했다. 비정규직보다 파견직을 먼저 줄여나가야 한다는 데 동의했고, 국공립대학교의 학사 시스템을 통합해 대학 서열화를 깨버리는 것은 센세이셔널한 해법으로 들렸다.

사실 일상을 지내면서 정치에, 사회 문제에 관심 갖기가 쉽지 않다. 당장 오늘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이미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에, 사회에 관심 갖지 않으면 그것은 어느 틈엔가 충치가 되어 나를 괴롭히고들 것이다. 작은 관심을 지속적으로 주는 것. 시스템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지켜봐 주고 함께 목소리 내는 것. 우리가 이 나라 주인이기에, 꼭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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