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로라하는 29명의 작가가 한데 모였다. 故 박완서 선생님을 뵈러 가는 길이다. 그들의 손에 하얀 국화 대신 이야기 하나씩이 들렸다. 선생님 앞에 드릴, 아마도 다들 오래 고민해서 썼을 이야기들이었다. 예쁘게 포장된 꽃다발처럼 마알간 그것을 나는 저만치 뒤에서 받아들어 읽었다. '사람답게 살아야지'했던 고인의 말씀이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책에는 그 마음이 그대로 담겼다.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또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하는 질문이 쏟아져 책장을 넘기던 손을 툭, 떨어트리고 만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왜,

라고 질문하다가 책을 덮었다. 눈을 뜨면 당연하게 주어지는 또 하루의 시간을 나는 당연한 일들을 하며 보냈다. 그러다가 '어? 이건 좀 생경한데?'싶은 순간과 마주하면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지. 나의 오늘은 과연 '어제의 내가 생각한 내일'이 맞는 건지.

이 책 <멜랑콜리 해피엔딩>에는 그런 순간들이 잔뜩 담겼다. 아마도 글쓴이들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사람다움'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술술 읽혔다고 생각했는데, 풉,하고 웃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책을 덮고 보니 너무나도 많은 페이지들이 접혀있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 점이 위로가 됐다. 벌써 서른네 해째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나의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삶의 불투명함'에 대하여- 그렇게 다들 살아가는 거라고, 그게 성장하고 있는 거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지혈제. 이런 독서는 지혈제다.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내면을 떼어놓고, 자신을 분리시키기 위한 수작이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그녀는 책장을 넘긴다.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개념 한두 개가 천천히 뇌 속에 들어와 눈물을 말리기 시작한다. 두꺼운 책들이 불어오는 감정들. 지식이 아닌 감정들.

<멜랑콜리 해피엔딩> 수록작, 김성중의 '등신, 안심'중에서

뭘 읽고 있냐고 남편이 묻기에 소설집이라고 답해줬다. 어떤 이야기가 가장 좋으냐고 되묻기에, 잠시 얼버무렸다. 이 이야기는 이래서 좋고, 저 이야기는 저래서 좋았다. 우리 삶의 모양이 둥그렇든 동그랗든 그 각자의 고유함이 있어 아름답듯 이 이야기들의 모양새들이 그랬다. 개인적으로는 윤이형의 '여성의 신비'가 오래 남았지만, 남편에게는 백가흠의 '저는, 오마르입니다'를 펼쳐 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놀이와 함께 온 코딩 - 컴퓨팅 사고력을 키워 주는 놀이와 함께 온 코딩 1
꿀잼코딩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20여 년 전, IT 산업이 눈부시게 성장하던 때 이런 경시대회가 있었다. 제시된 문제를 과학적이고 창의적으로 풀어내고, 그 결과물을 홈페이지로 만들어라-하는. 3명이 한 팀으로 움직였는데, 운 좋게 지역 예선에 통과해 서울에서 본선을 치렀더랬다. 오전 일찍 시작해 저녁이 다 되어서야 끝났던 그날은 아마도 해양생태에 대한 문제를 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능력, 자료를 서칭하고 논리적으로 배열하는 능력, 자료를 보기 좋게 만드는 디자인과 홈페이지 제작기술까지. 꽤 여러 가지 능력들이 요구되었던, 하지만 참가하는 우리로서는 아주 재미있었던 경시대회였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날이 새삼스럽게 떠오른 것은 이 책 <놀이와 함께 온 코딩>을 읽으면서였다. 그때의 html은 코딩, 혹은 C언어가 되어 부모가 된 우리를 자극한다. 왜 코딩이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지 생각해보기도 전에 올해부터는 초등학교 교과과정에 코딩이 편성된다고 한다. 게다가 대학별 SW 특기자 전형까지 신설된다고 하니, 이쯤 되면 코딩이 무엇이건 간에 우리 아이는 코딩을 꼭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코딩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학원에, 또 학교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대비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코딩을 왜 배워야 할까? 코딩이 왜 중요하다는 걸까?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코딩은 컴퓨터에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3차 산업혁명으로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지식 정보 혁명이 일어났었다면, 이제 초 지능과 초 연결을 바탕으로 지능정보기술과 기존 산업 및 신기술이 융합된 제2차 정보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덩치가 어마어마한 그것은 너무 멀리 있어서, 혹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무엇인지 잘 짐작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 은연중에 두려워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 현재의 직업 80%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은 그 불안에 불을 지핀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돌아보건대, 우리 모두에게 코딩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코딩으로 화려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프로그래밍하는 건 몇몇만 해도 괜찮다. 그렇다면 왜 코딩이 갑자기 학교 정규 교과과정에 편입되는 것일까? 우리는 그것을 이 책 <놀이와 함께 온 코딩>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코딩은 논리적인 사고력, 창의력, 문제해결력을 요한다. 예컨대 딸기잼을 바른 샌드위치를 만든다고 해보자. 식빵에 잼을 발라 만드는 아주 간단한 샌드위치지만 정확한 명령을 해야 한다고 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봉투에 든 식빵을 '2장'꺼내고, '잼 뚜껑'을 열어 '잼 나이프'로 잼을 '한 숟가락' 뜬 다음 식빵 '한쪽'에 고루 바르고 나서 나머지 한 장으로 덮는다. 아주 간단한 요리지만 순서를 바꾸거나 빠트리면 샌드위치가 되지 않는다. 코딩은 꼭 컴퓨터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책에 제시된 8가지 놀이는 코딩이 무엇인지 느껴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중간중간 아이가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문제도 있고, 놀이를 직접 해볼 수 있도록 필요한 카드와 주사위, 배경 판도 실었다. 코딩을 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상이라면 가족과 함께 충분히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에게 - 여성을 지킬 최소한의 법률상식
이찬숙.송지혜 지음 / 페이퍼타이거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결혼 전, 8년을 살았던 집이 있었다. 짐이 하나도 없어도 좁아 보이는 원룸의 월세도 만만치 않던 서울에서 햇빛이 들어오고, 방이 2개나 되면서 부엌이 따로 있는 (옥상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집은 서울 자취 판타지의 원형이었다. 그곳에서 20대를 보냈다. 살면서 큰 문제가 없었기에 주인과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전세 세입자와 주인이 연락할 일은 전세금을 올려달라거나, 이사 가겠다고 하는 일 외에는 없지 않은가. 이번에도 전세금을 올리지 않고 지나가 나보다-할 때마다 솔직히 안도했다) 문제는 결혼을 앞두고 터졌다. 이사를 하려고 하는데 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이다. 8년 전 전세 계약서에 적힌 연락처는 없는 번호였고, 주소지는 이미 다른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알고 보니 주인은 외국인이기도 했다. (90년대 후반에 이민을 간 것 같았다) 주인과 연락이 닿아야 부동산에 집을 내놓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으니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변호사를 찾아갔다.

잘 모르니까 그냥 서초동에 있는 큼직한 로펌에 갔다. 돈을 주고 일을 맡기러 가는 입장인데도 왠지 모르게 (면접이라도 보는 듯) 떨렸다. 변호사가 아니라 실장정도 되는 사람이 내 앞에 앉았다. 이야기를 들은 그는, 역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래도 전세금 반환 소송은 해보자고 해서 진행했다. 당연히 승소했고, 공시도 했다지만- 여전히 주인과는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불안한 마음에 주소지도 이전하지 못하고, 그저 법률적으로 나는 아직 그 집에 머물러 있다. 이게 벌써 5년 된 이야기.

법은 생각보다 느슨하고, 또 생각보다 촘촘하게 짜여 있다. 두꺼운 법학 사전을 뒤지지 않아도, 나와 당장 관계된 법령은 쉽게 검색해 읽어볼 수도 있다. 딱딱한 문체에 지레 겁부터 먹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법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의 정의만 익힌다면 크게 무리 없이 읽히기도 한다. 그래도 시작이 어렵다면, 이 책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에게>를 추천한다. 책은 법을 필요로 하고 법에 관심도 많지만, 막상 필요한 법률 지식은 갖추지 못한 '여성'들을 위해 쓰였다. 여성들이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문제들- 성범죄, 이혼, 직장에서의 문제(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불평등), 쇼핑(환불, 교환), 저작권, 중고거래 사기 등-을 법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중요한 부분만 콕콕 집어 정리했다.

이 책의 내용이 당장 필요 없을 수 있다. (그리고 부디, 필요 없기를 바란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요즘, 보험 들어두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둔다면 언젠가 한 번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권리는 누군가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면서 겪는 온갖 크고 작은 부당한 문제들에서 좀 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내가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 이 사회가 최소한의 안전망으로는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덕경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5
노자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려 2,500년 전의 이야기. 노자는 주나라 수장실에서 관리라는 벼슬을 지냈다. (오늘날의 국립중앙도서관 관장) 주나라가 갈수록 쇠퇴하자 노자는 주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국경인 함곡관에 이르른다. 노자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던 함곡관의 영윤이 노자에게 "이제 당신께서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려 하시니, 간절히 청하건대 저를 위해 부디 한 권의 책을 써주시오."하고 부탁하자, 노자는 자신의 생활 체험과 왕조의 흥망성쇠, 백성의 안위화복을 거울로 삼고 그 기원을 밝혀 논한 <도덕경>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 책 한 권을 남겨두고 푸른 소를 타고서 떠나, 그 뒤로는 종적조차 알 수 없었다 하니 여기 남겨진 이 책이 어찌 신비롭지 않을 수 있을까.

노자가 속세로부터 떠나겠다 한 때는 각국 간의 무력에 의한 전쟁이 끊이지 않던 때였다. 전쟁이 계속되니 '사회'라는 게 존재하기 힘들었다. 하물며 윤리는 더 그랬다. 끊임없이 부딪히는 권력의 욕망들에 백성들은 오로지 생존만을 위한 오늘을 살았다. 그 광경을 지켜본 노자의 '무위'는 필연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도덕경>에서 소박함과 청정, 겸양 등 자연에 순응하는 덕성을 주장한다.

<도덕경>은 그 내용이 인간의 본성과 가장 부합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부담없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이라 했지만, 쉬이 읽히지만은 않는다. 어떤 부분은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않았고, 또 어떤 부분은 너무 거대한 것이 감추어져 있는 것 같아 두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때로는 궤변으로까지 읽혔다. 하지만 이 책 전체를 가로질러 그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변질된 ‘지식’이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진정한 ‘지혜’를 권함에 대해서만은 진심으로 수긍했다.

 

"돋움발로 서 있는 자는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황새걸음으로 걷는 자는 오래 걸을 수 없다.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고자 하는 자는 오히려 드러낼 수 없고,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자는 도리어 찬양받지 못한다. 자기의 공적을 자랑하고자 하는 자는 도리어 공적이 사라지고,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오히려 존중받지 못한다.

이러한 것들을 도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지나치게 많이 먹어 살이 불어난 상태이다. 그러한 것들은 사람들이 혐오하는 것이다. 도를 지닌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도덕경>은 ‘도’에서 출발하여 ‘덕’을 향해 나아간다. 이 책에서 가장 추상적인 개념인 ‘도’는 천지만물 생성의 원천이자 동력이다. 그 자체가 명사이자 동사이기도 한 것이다. 얕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오늘의 나는 ‘도란 무엇인가’ 생각해보며 근원, 근본에 대해 자문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책이 2500년의 시간을 견뎌 오늘의 나에게 닿았음은, 아무리 세상 모든 것이 변한다한들 인간의 본질만은 변하지 않음을 역설하고 있는것 아니겠는가, 하고. 그래서 조금은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결핍된 방향으로 가는듯한 그 쪽으로- 가보려고 한다. 채우기보다는 비우는 쪽으로, 굳세게 하기보다는 유약하게 하는 쪽으로. 형태가 없는 것이야말로 틈이 없는 곳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청정함은 소란함을 이겨낼 것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최근 동양 고전을 몇 권 읽었다. 한자인데다 고어여서 원문으로는 그 의미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친절하게도 의역된 해설서들이 많이 나와있었다. 야심 차게 두어 권을 골라 동시에 읽었다. 이 책에서 쓰인 바를 읽고 전혀 이해되지 않던 것이 저 책의 해석을 읽고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부분은 두 책에서 쓰인 해석이 완전히 달라 미궁에 빠지기도 했다. 해석이 있기 이전에, 번역의 문제였을 것이다.

 

이 책 <'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는 <어린 왕자>의 원문과 직역된 <어린 왕자>를 나란히 싣고, 역자 노트를 챕터마다 붙였다. 기존의 번역들과 원문을 비교해가며 어떤 문장이 어떻게 의역되었던지, 어떤 문장이 역자에 의해 보충되고 생략되었던지 상세하게 다루었다. 사실 번역된 짧은 문장만 읽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기도 했다. 하지만 문학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맥락 속에서 어떻게 쓰인 말인지를 정확하게 우리 말로 번안하는 일이다. 단지 한 문장을 우리 말로 읽을 수 있다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이다. 너무나도 사소해 보이지만 조사 하나로도, 시제 하나로도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야기의 긴장감이 일순간 확, 사그라들 수도- 캐릭터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번역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읽어왔던 <어린 왕자>는 굉장히 파편적인 것이었다. 모두가 <어린 왕자>를 읽었지만, 누구도 <어린 왕자>의 줄거리를 명료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것은 이 소설이 서사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전체 맥락이 고려되지 않은 번역본을 읽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서사는 기억나지 않고, "만약 네가, 예를 들어,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하겠지."같은 달콤한 문장만 남은 것이다.

 

역자가 왜 이렇게까지 주석을 달아가며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해야 했던지, 여러 번 생각했다. 그것은 유럽풍으로 옷을 갈아입은 천문학자가 소행성 B612에 대해 논증하는 장면과도 같았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가 아이의 새로운 친구에 대해 물을 때, 본질에 대해서는 전혀 묻지 않고 "그 애 나이는 몇 살이니? 형제는 몇 명이니? 몸무게는 얼마니? 아버지 수입은 얼마나 되니?"하는 곁가지들만으로도 그를 알았다고 믿어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덕분에 <어린 왕자>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대한 오해를 풀 수도, 그의 눈높이에 맞춰 나를 낮출 수도 있었다. 여러모로 감사한 일이다.

 

 

 

 

"어떤 위대한 번역가라 해도 작가가 쓴 문장보다 좋은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어떤 위대한 학자라 해도 작가가 쓴 문장보다 나은 의미를 담은 문장을 창작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번역은 그야말로 작가가 쓴 의미를 찾아가는 고된 노동인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39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