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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음음, 차가워. 사후 수 시간은 지났겠군그래. 음, 후두부에 상처가 하나라. 사각 물체로 때린 것 같고 상처가 깊어. 흠, 이것이 치명상이었던 모양이야." ... "그건 그렇고, 이건 대체 뭔가?" 나도 처음부터 그것이 걸렸다. 시체의 머리 부분을 중심으로 하얀 것이 산산조각 나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두부다. 앞으로 쓰러진 시체와 그 주변에 흩어진 두부. 게다가 시체의 후두부에는 사각 물체의 모서리로 구타한 상처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으로 보인다. 1944년 12월 초순. 제국육군특수과학연구소 2-13호 실험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중에서, 156-157쪽)
응?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사람이 죽었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냐 싶은데- 정말이지 묘하게도 이 이야기들에는 설득력이 있다. 설득력만 있는 게 아니다. 부조리한 상황과 부조리한 트릭과 복선을 통해 우리 사회에 묘한 미소를 보낸다. 독자인 우리는 작가의 편에 서서 같이 묘한 조소를 보냈다가, 그 반대편에 서서 어쩔 줄 몰라 움찔거린다.
이 책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에는 모두 6편의 미스터리 단편이 실려있다. 이상한 룰의 연쇄 살인을 다룬 'ABC 살인', 인공지능 시대를 묘하게 비꼬는 '사내 편애', 기괴한 살인 현장의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고양이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다 시작된 '밤을 보는 고양이', 그리고 표제작인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과 살인 사건의 추리가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묘하게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다. 먼저는 '살인'이라는 키워드일 테고, 그보다 조금 더 넓게는 '타인의 폭력'일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했다, 혹은 하게 했다는 것. 또 내가 누군가를 어떻게 했다는 것. 그것은 결국 원을 그리며 빙빙 돈다. 작가는(또 소설을 읽는 우리는) 그 원을 따라 돌며 원 안에서(혹은 원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를 살핀다. 원 안쪽만 들여다봤을 때는 전혀 이해되지 않던 일들이 원 밖에서 해결되기도 하고,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던 원 밖의 일들이 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재조명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 경계 사이에 모호하게 놓여서 이것을 감히 '미스터리'라 부르며 즐긴다.
개인적으로는 '사내 편애'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영화 <her>와 켄 리우의 단편 소설 <천생 연분>이 동시에 떠오르던 이 소설은 멀지 않은- 어쩌면 이미 도래한 세상을 돌아보게 한다. (사내 편애를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로부터 받게 되다니. 사내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네트워크 컴퓨터가 나를 편애했을 때, 나는 어떻게 될까?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극도로 발달한 컴퓨터가 인간이 하지 않은 말, 하지 않은 생각을 '그럴 것이다'라고 추측해 실행할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상상해 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사실은 마지막 장면에서 완전히 소름 돋았다)
사실 나는 SF나 미스터리 장르를 즐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이 궁금했던 것은 역시 제목이었다. (사건의 전말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잖아!)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게 했던 원동력은 제목의 힘뿐만은 아니었다.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계속 본격 미스터리 입문 편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라고 말했다는 작가는 초심자도 거부감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소설을 써서 내놓았다. 그래서인지 쉽게 읽혔고, 그러다 멈칫하는 순간에는 날카로운 트릭과 수수께끼의 풀이가 빛났다. 이런 게 미스터리인가, 그렇다면 몇 편 더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물컹하게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