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얼지 않게끔 새소설 8
강민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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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은 '변온'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변온 인간'이 아닐까, 의심받게 된 인경은 뜨거운 여름을 지나는 사이 목이 마르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달리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땀을 흘리지 않았으니 수분을 빼앗길 리 없었고, 항상 따뜻하고 온전한 상태로 여름을 누렸다.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시멘트 바닥도 아무렇지 않았다. 발과 손은 늘 따듯했다. 지독했던 수족냉증 역시 사라졌다. 그런 완벽한 날들을 인경은 희진과 함께 보냈다. 같은 사무실에 있었지만, 이야기를 섞어본 적 없는- 그저 서먹서먹한 동료였던 희진은 인경의 '변온'을 처음으로 눈치챈 이다. 희진은 인경의 변화를 놀라워하긴 했지만, 신기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인경을 걱정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배려했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세상과 공유하지 않는, 둘만의 비밀을 갖게 된 인경과 희진은 서먹했던 사이에서 둘도 없이 끈끈한 사이가 된다. 유난히 더위를 이기지 못해 오피스룩은 고사하고 제멋대로 옷을 입고 다녀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어야 했던 희진은 사실 정도 많고 털털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진짜 희진이 보였다.


참 이상하죠, 저는 더운 게 싫을 뿐인데. 싫은 건 이유 없이 그냥 싫은 건데

사람들은 뭔가 늘 이유가 있고 숨겨진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걸 캐내는 걸 유난히도 좋아하고요.

비밀을 파헤치는 탐정 만화의 주인공들도 아니면서, 정말.

본문 중에서, 77쪽


그냥 '더운 게 싫을 뿐'이었던 희진은 인경에게 일어나는 변온 현상에도 어떤 원인을 가져다 붙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인경에게 일어난 일.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그 변화가 인경을 괴롭힐 거라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대비하는 것이 그녀가 한 유일한 생각이었다. 드러나지 않은 조심스러운 행동은 연대의식으로 발전해나갔다. 애초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할 수 있었다. 희진은, 스스로가 더위를 견디기 어려운 만큼이나 추위를 견딜 수 없을 인경을 배려했다.

어쩌면 두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어서 (더위를 견딜 수 없었던 희진은 희진대로- 추위를 견딜 수 없는 인경은 인경대로-)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그러니까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 인간적인 유대의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이유야 어쨌건, 연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행복한 일 아닌가, 하고. 쉽게 열어줄 수 없는 어떤 문까지 기꺼이 열어주고- 나 역시 상대방의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면 아무리 견디기 어려운 나날들이라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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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선 - 하드보일드 무비랜드
김시선 지음, 이동명 그림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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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스크린 밖에는 스크린 안보다 더 깊고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러고 나니 일단 영화를 많이 봐야 했다. 극장에 가는 일이 제일 신났지만, 의무감에 본 영화도 적지 않았다. 영화제에 가서는 욕심내 티켓을 잔뜩 끊어두고, 극장에서 잠든 날도 많았다. (밤새 영화 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을 그렇게나 마셨으므로;ㅁ;...) 그때는 그랬다. 그게,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이 책 <오늘의 시선:하드보일드 무비 랜드>는 영화 잘 아는 할아버지가 되는 게 꿈이라는 김시선의 영화 에세이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계속 보다 보니, gv를 진행하게도 됐고, 책도 쓰게 됐고, 유튜버로도 활동하게 됐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사실 그 안에는 영화에 대한 그의 진심이 꽉꽉 들어차 빈틈이 없어 보인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는 영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사랑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했다면, 영화에 조금 더 용기 낼 수 있었을까.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영화 만드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자리에서 관객으로. 그리고 지금은, 관객이라고 하기도 머쓱한 어떤 자리로 와서 앉았다. 언젠가 '어떻게 영화를 보지 않고 살 수 있어?'라고 목에 핏대 세워가며 흥분했던 나는 '까짓것- 영화 안 보고 산다고 사람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하고 말꼬리를 흐린다. 그럼에도 영화를 안 보고 사는 내가 이렇게나 슬프고 아린 것은, 그래도 아직 영화에 대한 애정이 조금은 남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 책을 읽는 동안- 오랜만에 영화에 진심인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눈 느낌이다. 좋은 영화를 보고 싶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갔을 때,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이 영화 죽이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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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것인가? - 평정심을 찾고 싶은 현대인을 위한 고대의 지혜 아날로그 아르고스 1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제임스 롬 엮음, 안규남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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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엘리베이터에 붙은 층간 소음 예방 포스터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엄마, 보복 소음이 뭐예요?" ... 보복? 위에서 쿵쿵거리면서 뛰어놀면 아래층 사람들은 너무 시끄럽잖아.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위층 사람들에게도 알려주는 거야. 설명하고 보니 구차했다. (포스터에 보복 소음 관련 내용이 실렸다는 것은) 그런 일이 심심찮게 일어남의 반증이었으므로 부끄럽기도 했다. 그것은 명백히, 우리가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1세기 중반, 세네카는 이렇게 썼다. "너의 분노는 일종의 광기다. 무가치한 것에 높은 가격을 매기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6쪽) 오랜 시간을 버텨 오늘의 내게로 온 문장은 나의 분노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무엇에 분노하는가, 내가 분노하는 그 일은 정말로 분노할만한 일인가. 그때 일어난 분노를 나는 어떻게 다스리고 있는가. ... 세 개의 질문을 노트에 차례로 써 두고, 생각나는 대로 써보았다. 어떤 분노는 너무 사소해서 민망했고, 어떤 분노는 더 많이 분노하고 행동해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다스려야 하는 분노는 다스려지지 않았고, 타협해서는 안 될 분노는 너무 쉽게 수그러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왜 분노해야 할 일에 제대로 분노하지 못하고, 분노할 가치가 없는 일에는 크게 분노하고 있는 것일까.

오래 생각한 끝에, 더 많이 분노하고 행동해야 하는 일에는 분명한 대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 지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문제나 누군가의 부주의로 저지른 실수에 분노할 때는 분명한 대상이 늘 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분명하지도 않은 대상에 화를 내는 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이유가 훨씬 가벼운 것이더라도 내 앞에 있는 이에게 '잘못된 행동'을 근거로 화를 내는 쪽이 훨씬 쉬웠다. '어떻게 네가 내게 이럴 수 있니'로 시작하는 분노는 끝을 모르고 들끓는다. 그러다 보면 그 끝에서 우리의 무지와 오만을 마주하게 된다.

각자의 내면에는 왕의 정신이 존재한다. 완전한 자유가 자신에게 쥐어지기를 바라지, 반대하는 자들에게 쥐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본문 중에서, 64쪽)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쁜 사람들이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이 뭐 그리 놀랄 일이겠는가?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라는 말은 그제와 늘어놓는 변명일 뿐이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예상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은 아무리 좋은 인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상당히 불미스러운 뭔가를 품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분노할 수 있다. 때로 분노는 삶의 강력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잠깐이다. 분노가 만들어내는 힘은 너무 뜨거워, 타인뿐만 아니라 분노하고 있는 자신마저 태워버린다. 이는 화를 유난히 쉽게 내는 누군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강건한 신체와 부지런한 건강 관리도 병약한 사람과 건강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는 무력하듯, 분노는 천성이 예민한 사람에게나 느긋하고 침착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아주 위험하다.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분노할 수 있고, 나 역시 분노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됨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분노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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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 -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을 위한 고대의 지혜 아날로그 아르고스 2
에픽테토스 지음, A. A. 롱 엮음, 안규남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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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우리에게 '자유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우리의 대답은 제각각일 것이다. 자유를 갈망해왔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위대하고 중요한 가치인 '자유'는 대체 무엇일까? ... 질문을 마주하며 나는 '~로부터'라는 전치사를 떠올렸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가? 노예제로부터, 계급으로부터, 돈으로부터, 사상으로부터. 혹은 신체를 내 의지대로 움직일 자유, 생각하고 표현할 자유, 오늘 나의 삶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선택할 자유. 그러니까 자유는 무엇인가 나를 속박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 아닌가, 하고.

이런 생각 앞에서 책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1) 건강과 부처럼 흔히 좋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항상 그리고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이로운가? (2) 그것들이 행복에 필수적인가? (3) 그것들은 우리에게 달려있는가? (4) 그것들은 정신에 달려있는가? (5) 그것들은 우리의 이성적 본성과 조화되는가? 스토아 철학자들의 결론처럼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모두 명백히 '아니오'라면 흔히 좋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얻거나 흔히 나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피한다고 해도 행복할 수 없다. (본문 중에서, 28-29쪽)

이 책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는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자유'의 개념을 뒤흔든다.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모든 일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외려 자유는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되어있는 대로 일어나기를 바라는 과정에서 피어난다. (저자는 그것이 교육이라고도 썼다) 오늘 날씨가 너무 춥다고, 기온이 20도쯤 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유로운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유는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성 그대로 두면서 우리의 정신이 일어나는 일과 조화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에 우리에게 온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만 둔다면- 자유는 어디에서, 어떻게 발현될까. 에픽테토스는 우리의 자유가 우리 정신 안에서,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으로 발현된다고 보았다. 그것은 정신의 영역으로,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영역이다. 예컨대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것,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동기, 무엇인가를 욕망하거나 혐오하는 것 등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자유는 여기에서 온다. 무력하고 노예적이며,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자산이나 평판, 사회적 지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직시하고 나면 상당 부분에서 자유로워진다. 사람들이 나의 노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파티나 모임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해서- 명예가 없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 그 누구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가치 평가할 뿐인데, 실제하는 그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아니므로, 그를 그렇다고 평가한 사람만이 무안해질 뿐일 테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사람일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에서만 중요한 사람이면 되고,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에서 우리는 최고일 수 있다. 그거면, 충분히 자유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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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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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로는 깜짝 놀랄 만큼 개방적이고, 때로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보수적이어서 늘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왔다 갔다 하게 하는 다나베 세이코. 그녀를 만나게 해 준 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 수록된 단편소설집을 읽었다. 책에 실린 아홉 편의 이야기는 모두 남녀 사이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어떤 관계는 얇고 연한 선으로, 어떤 관계는 굵고 진한 선으로- 또 어떤 관계는 얇고 진한 선으로 그려졌다. 그 미묘한 차이들은 각기 다른 공기를 만들어 냈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때)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다른 공기를 만들어내는 감각이 좋았다.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은- 그들의 베이스 노트가 뭘까, 생각했었는데 작품 해설 속에서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인생을 사랑하는 재능을 갖추고 있다'라는 문장을 발견하고 무릎을 탁, 쳤다. 그거였구나. 그래서 자기 안의 이중인격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고, 그로 인해 자기를 더 사랑하게 되기도 했던 거구나. ...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종종거려왔던 내게 소설 속 주인공들은 조화로운 삶을 살아보면 어떻겠냐고 부드럽게 손을 내밀어오는 것 같았다. 무엇에건 (나보다) 조금 더 여유롭고, 느긋한 그녀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갔다. 주어진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줄 아는 그녀들은 삶을 우아하게 사는 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2. 표제작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호랑이처럼 강하면서도, 물고기처럼 부드럽게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영화가 남겨둔 잔상으로 조제의 이미지가 다소 울퉁불퉁하기도 했었는데, 소설을 읽는 사이 그 모난 부분이 부드럽게 깎여 내려갔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순간들을 지켜보며, 우리에게 사랑이 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찬찬히 곱씹게 되었다. 사랑이 모든 것을 구원할 수는 없겠지만, 진실했던 사랑의 경험은 삶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하니까.

3. 소설을 읽는데, 시를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숱한 단편소설을 읽으면서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생각이었다. 작가에게 포착된 삶의 한 장면이 글로 박제되고, 그것이 내게 와 읽힐 때 다시 생생하게 살아난다. 페이지 사이에서 그네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말갛고 빠알간 소설 속 얼굴들이 보이는 듯했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로 오랜만에(거의 십이삼 년 만에) 한 생각이었다. 마음이 쫀득쫀득한 사람들과 언제나 끝까지 갔다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오바와 이와코를, 전처와 아이들에게 남편을 보내던 날의 에리코를, 여동생의 예비 남편을 맞이하는 고즈에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단 몇 페이지 사이에서 그토록 생생한 인물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적혀지지 않았지만, 그들의 어제와 일주일 전, 일 년 전, 십 년 전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텍스트가 팝콘처럼 펑, 하고 터져버려서- 그래서 이 소설들이 '시'같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4. 맛있는 귤을 사 와서 영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도 다시 봐야겠다. 이 영화를 처음 만났을 때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아- 벌써 시간이 이만큼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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