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스트 인 러브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즐겨듣는 오디오 매거진에서 무당들의 이야기를 들은 참이었다. '신내림', '굿', '악귀' 등등의 단어를 오랜만에 마주했다. 둘러앉은 네 명의 무당들은 신내림을 받게 된 각자의 사연을 소개하며 '하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한 사람은 없을 거'라는데 동의했다.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래서 몰랐던 세계였지만- 90여 분의 시간 동안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자니 어떤 진정성 같은 게 느껴졌다. 신내림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 좋은 무당일 수 없었고, 무당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 수도 없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신은 죽었다'라고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던 나는 신이랄지, 영혼이랄지, 사후세계랄지 하는 알 수 없는 것들에 다시 물음표를 하나 그려 넣었다.
이 책의 주인공 토마는 어머니의 서재에서 마리화나를 피운 후 5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다. 분명한 아버지의 목소리는 토마의 말에 대답하고 있었지만 토마는 '환영'이거나 '환각'일 거라고 생각한다. 혼란스러워하는 토마를 아버지 레옹은 안심시켜 보려고 하지만,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마치 한 방에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안심될 리 있을까. 그래, 아버지의 기일, 연주회 스트레스(토마의 직업은 피아니스트다), 누적된 피로, 피우지 말았어야 했던 마리화나. 이런 것만으로도 없던 감각이 생기기에 충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는 일시적인 환각이 아니었다. 토마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으며(귀신이 된 아버지는 말이 많아졌다!), 급기야는 뭔가를 부탁하기에 이른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그 부탁은- 본인의 유골을 가지고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일생 동안 다른 사람들 몰래 사랑했던 한 여자의 유골과 합쳐달라는 것. 너무 황당해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를 그 부탁에, 토마는 결국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해버리고 만다.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 그 여자를 어린 토마와 함께 떠난 바캉스에서 만났다는 것(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자리에 토마 본인이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 죽어서라도 그 여자와 함께 있고 싶다는 것. 아버지가 토마에게 쏟아내는 이야기는 시종일관 황당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아버지가 밉지 않다. 장례식장에 잠입해 미리 구조를 익혀두고, 조문객으로 위장해 유골을 훔치기까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토마와 레옹의 황당한 여행기는 두 사람의 끝없는 티키타카로 완성된다.
"35년을 참았는데 마음에 담은 말 털어놓는 거야 목적지에 도착해서 해도 늦지 않아요."
"마음에 담은 말이 뭔데? 나는 너에 대해 아무 불만이 없는데, 너는 있는 모양이구나?"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너는 그렇게 말했어. 내가 너에게 충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불평하면서 서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알아맞히는 게임이라도 하자는 거니? 그래, 좋아. 해보자. 연장자 순으로 내가 먼저 시작하마. 내가 좋아하는 영화, 내가 좋아하는 음악 그리고 나를 가장 감동시킨 책이 뭔지 네가 알아? 모르잖아? 이러면 한 방으로 체크메이트, 즉 게임 끝이 되는 거지. 이런 종류의 질문으로 나를 함정에 빠뜨릴 속셈인가 본데."
"죽음이 아빠에게 내 머릿속을 읽는 능력이라도 줬나 보죠? ...<빵과 초콜릿>, <사랑을 비를 타고>는 아빠가 샤워하면서, 운전하면서, 아빠의 사무실에서 부르던 노래였고,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 기분이 좋으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 대해 얘기했고, 프랑수아 비용의 시와 랭보의 시 '골짜기에 잠들어 있는 사람'을 읊었어요. 이러면 방금 아빠의 킹이 잡힌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본문 중에서, 104-105쪽)
귀신이 된 아버지가 찍겠다는 '사랑과 영혼'의 조력자가 된 토마. 왠지 모르게 이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건- 아버지가 하고 싶었던 일이 사랑했던 여인과 같이 묻히는 것 말고도 또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너의 문제를 발견했어. 아들아, 너는 별로 웃지를 않아."
"아빠가 무슨 말을 할지 벌써 알겠어요. '한 번 사는 인생이야.'"
"아니, 그것도 엄청난 사기야. 진실은 죽는 건 딱 한 번이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거야. 그러니 그렇게 슬픈 얼굴 하지 마." (본문 중에서, 1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