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죽음
마이클 파렌티 지음, 이종인 옮김 / 무우수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정말 읽고 싶은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민중의 입장에 서서 카이사르의 죽음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원로원의 귀족파들이 평민파 지도자를 암살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카이사르의 죽음이 왕위에 오르려는 독재자를 암살한 원로원의 공화정을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행동이었다는 점에 정반대되는 해석이다.

그리고 저자는 다양한 국가와 민족을 포용하면서도 개방적이고 평화적인 제국, 로마를 부정한다.

 

"칼레도니아의 부족장 칼가쿠스Calgacus는 서기 1세기 말에 이런 말을 했다.
로마인에게서는 그 어떤 논리로도 불식시킬 수 없는 오만함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의 도적인 그들은 무제한적인 약탈로 땅을 파괴하더니 이제 바다를 노략질하고 있다. 적의 부는 그들의 탐욕을 불러일으키고 적의 가난은 그들의 권력욕을 부추긴다. ……강도, 학살, 약탈, 이런 짓을 해놓고서 거짓말쟁이 로마인들은 그것을 제국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무차별 파괴를 해놓고 그것을 평화라고 부른다.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은 먼 땅에 가서 노예 노릇을 하기 위해 무자비하게 징용되어 우리의 품으로부터 떠나갔다. 우리의 아내와 딸들은 적군에 의해 강간당했거나 우리의 친구, 혹은 손님인 줄 알았던 자들에 의해 농락당했다. 우리의 물건과 돈은 세금으로 사라진다. 우리의 땅은 그들의 곡차을 채우기 위해 수확을 빼앗긴다. 우리의 사지는 압제자의 채찍을 맞아가며 숲과 늪지에 길을 내느라고 불구가 된다. 우리 브리튼 사람들은 매일 노예로 팔려간다. 우리는 자신들의 몸값을 지불해야 하고 게다가 또한 우리의 주인들을 먹여주어야 한다." (본문 p.23)

 

또한 어렵고 힘든 평민들의 생활상을 들며 로마의 후기 공화정이 당시 귀족들만을 위한 귀족들의 공화정이었음을 주장한다.

 

 "대부분의 도시 평민들은 하찮은 돈을 받아가며 오랜 시간 일을 해야 되었고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생활을 했다. 농촌 평민들plebs rustica도 도시의 평민들에 비해 별반 나을 것이 없었다. 시골의 평민들은 궁핍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라티푼디아(latifundia: 대농장) 농장주들이 맡기는 험한 일을 해서 수입에 보태려 했다. 이들 농장주는 남북전쟁 전 미국 남부의 농장주들처럼 인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일에는 해방민 노동자를 썼다. 그들의 계산에 의하면 일용 노동자의 죽음은 저승의 인구수를 늘려주는 것으로 끝나지만, 노예의 죽음은 아까운 자본의 손실이 되는 것이었다." (본문 p.36)

 

구체적이고도 치밀한 논리들은 그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특히 고대의 키케로와 18세기의 에드워드 기번 그리고 20세기의 로날드 사임, H.H 스칼러드 등 기존의 역사가들의 역사관 자체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그들의 잘못된 관점과 해석을 지적한다.

그리고 카이사르가 이전의 그라쿠스 형제, 클로디우스 풀케르와 같이 몰락한 공화정을 개혁하려다 기득권을 위협받은 원로원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본다.

 

 "역사상의 모든 지배 계급이 그러했듯이, 로마의 귀족들은 그들의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 특히 대중의 희생 위에 그들의 부를 축적하는 무제한의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 맹렬하게 반발했던 것이다. 재산 축적은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아닐지 몰라도 주요 관심사였다. 간단히 말해서 귀족들은 전통적인 절차와 법률을 지키려 했다기보다 그런 것들이 보호해주는 계급의 특혜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필요할 때면 ‘전통적인 제도’를 벗어나 유혈 탄압의 비상 수단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화정의 의사결정을 민주화하려는 평등주의적 개혁과 시도를 공화정을 어지럽히는 행위로 인식했다. 이러한 인식과 관련하여 한 가지 지적해 두어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의 많은 역사가들이 이런 귀족파의 인식에 일방적으로 동의해 왔다는 점이다." (본문 p.89)

 "그라쿠스 형제, 클로디우스, 카이사르와 같은 사람들, 평등주의 원칙의 옹호자로서 과감히 나선 사람들은 오히려 그렇게 민중을 옹호하다가 자신의 목숨으로 최악의 희생을 치렀다. 이렇게 볼 때 그들이 대중을 위해 앞에 나선 것은 자기 인기와 권력 추구 등 자기를 높이기 위한 욕망만 작용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본문 p.148)

 

저자는 이미 책을 시작하면서부터 결론을 내렸다. 후기 공화정 시대에 이미 공화정은 몰락했고 공화정의 자유를 지키려고 혹은 개혁하려고 했던 카이사르는 그가 원로원의 귀족파의 기득권을 위협했기 때문에 기득권의 위기를 느낀 귀족파에 의해서 암살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저자 마이클 파렌티는 키케로 등 기존의 역사가들이 귀족의 입장에 치우쳐져 편견을 가지고 평민들을 간과하며 역사를 썼다고 비판하면서도 정작 그런 자신도 철저하게 평민의 입장에 치우쳐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누구나 역사가라면 그들의 역사관과 입장을 가지고 있고 그 역사관과 그들의 입장으로 보는 역사를 쓴다. 어쩌면 개인적인 의견이나 감정이 포함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들이 본 것만 쓰여지거나 보고 싶은 것만 쓰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키케로보다 파렌티에게 손을 들어 주고 싶다.

로마 공화정의 정치 구조가 어떤 이성적 의도에 근거하여 완전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시민계급과 귀족계급 사이의 오래된 갈등에서 빚어져 나온 구조로서, 민중의 권리 요구와 귀족의 기득권 보호 사이에서 엉거주춤하게 마무리된 것이고 당시대 상황과 전후관계를 살펴 보았을 때 파렌티의 주장이 좀 더 논리적이고 좀 더 설득력을 얻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당대 최고의 영웅이고 그의 이야기는 고대 유럽사중에서 가장 재미있으며 언제 읽어도 재밌고 흥미진진한 로마사 이야기의 제 1의 주인공이다. 나 또한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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