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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28
J.D. 샐린저 지음, 김재천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에 치일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가끔 전화해서 '한번 봐야지...'하면서도 말뿐인 소원한 관계인데다 생각해보면 그닥 친하다할만한 적이 없었던, 서로에게 주변인인 사람인데도 이 책은 그 사람, 이렇게 연결고리가 있다. : 호밀밭이 보이고 홀든이 서있다... 아니 그가 서있다.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는다든지, 공감을 느낀다든지 그런 사람은 많다. 그렇지만 스스로가 홀든처럼 세상을 증오하고, 구차하게 인생을 주어담기를 거부하고, 그리고 철저히 혼자라고 감히 평가할 수 있는지. 아니, 우리는 이미 의무교육 시절 단한번의 결석도 애지중지하는 습관을 들였다. 가끔 변덕처럼 느끼는 외로움을 그의 황량함과 비교하지 말자. 우리는 철저히 홀든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홀든의 방황이 순수함에서 오는 것, 또는 한번쯤 겪는 청소년기의 그것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외로움=순수한 심성=우리가 보호해줘야하는' 이런 공식은 홀든에게는 또다른 비아냥꺼리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정말로 홀든의 룸메이트가 홀든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했다면 홀든의 응어리를 풀고, 증오의 감정을 쓸어버리고는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흘렸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 또는 그런 순수한 마음이 가능하다고 믿는건지.. / 홀든이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직업을 원하는 기저에는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려주는 무의식이 있다. - 죽은 동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홀든에게 이상적 존재로 남아있을 수 있는 것처럼.)
홀든의 정서를 이해해보려고 나는 홀든이 내 주변의 실존인물이라고 가정해봤다. 소설이라는 틀안에 갖혀있는 존재들에게 흔히 그러듯 그에게 필요이상의 동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만약 '그'를 몰랐다면 나는 굳이 이런 노력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 한켠에선 '그런 사람은 없어. 뼛속까지 외로우면 다른 사람한테 기대기 마련이야'라고 믿어버렸을테니깐. 그렇지만 그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 내 주변의 실존인물이 됐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거부나 공포 - 죽음을 직면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홀든이 실존인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성악설을 떠올리게 했다. 홀든이 악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치도 미화하지 않고 세상의 악, 추함을 직시하기 때문에.
이제 나는 잡다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댄다. 홀든은 괴로운 만큼 눈을 가리고 싶겠지만, 그러지 않는 건 그럴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선뜻 이 사실을 사실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건 내가 홀든만큼 용감하지 못한 탓일까? 이 책이 위대한 이유는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는 포악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국제적 암살범들이 이 책을 읽었다는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닌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