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챙기려고 이동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엄마가 아까 열쇠 가지러 갈 때 너희한테 수영복을 꺼내는 걸 더 자세히 설명했어야 했던 것 같아."
"어제부터 몸으로 놀아서 다치면 수영장 못 간다고 했는데, 여기서 다칠 줄이야!"
"다친 건 돌이킬 수 없고, 엄마 생각엔 수영장에 발이라도 우선 담가보자. 이대로 돌아가면 네가 너무 속상할 것 같아."
"이렇게 다치면 저기 의무실이라고 적혀있지? 저기로 가서 상황을 이야기하는 거야. 같이 가보자."
"샤워 후에 파스를 이렇게 뿌리고 병원을 찾아보자."
"오늘 그래도 여기 수영장의 이용방법을 알았으니까 다음에 왔을 땐 신나게 놀 수 있을 거야."
나의 대화가 무조건 잘했다고 글로 적은 것은 아니다. 분명 감정이 앞서 나오는 표현들도 있었고,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표현이 공존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적었다. 그때의 내 마음 상태이기도 했다. 아이와 이야기해 보니 아픈 것보다 수영을 못해서 속상해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동생이 나가지만 않았어도 다치지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도 했다.
<못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는 둘째 딸이 태어난 즈음 읽게 되었는데, 이번에 리커버 에디션으로 나온다고 해서 다시 한번 읽게 되었다. 여전히 오은영 박사님의 육아 철학이 가득 담겨있다. 동시에 기다림과 존중, 유연함과 단단함으로 소통하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