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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 ㅣ 사계절 만화가 열전 2
최규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평점 :
어제 큰딸 학교의 도서관에 봉사를 다녀왔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학교 출입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3년 동안 가본 적이 없었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가면 매일 들리는 학교 도서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1학년 때부터 통화만 나누었던 사서 선생님도 뵙고 싶어서 봉사 학부모 공지가 뜨지마자 신청했었다. 아이들의 대출, 반납도 도와줄 수 있었고 반납된 책을 정리할 수 있었던 기회여서 신청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모를 위한 도서 코너도 있어 ‘한 권 읽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쭉 둘러보는데 이 책 제목이 눈에 띄었다. <지금은 없는 이야기>! 왠지 공포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상 깊었던 이야기 두 가지만 소개하자면, 바로 [불행한 소년]과 [숲]이란 작품이었다. 작가의 말과 연결되어 그 내용이 뇌리에 박혔다. 왠지 당분간 이 이야기들을 자꾸 되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은 불평불만 하지 말고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말하는 이야기로 차고 넘치지만, 예전엔 삶의 고통을 견디는 의지들을 허용해 주었으나 요즘엔 그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고 한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이 오직 개인에게 있는 이 잔인한 세상에는 '이야기'가 지배한다는 표현에 숨이 턱 막혔다. 생각해 보니 이야기에 이야기로 지배되는 세상, 어떤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말들이 떠올랐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는 갑자기 수많은 '입'들이 채워지는 공간들이 상상되었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숲에서 가장 큰 나무가 되고 싶어 하는 나무가 있었다. 어떤 나무도 필요이상으로 몸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그 나무는 자신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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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내려다보게 된 나무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아 우쭐거렸다. 몇몇 나무들은 그 나무의 으스대는 꼴을 보고 속이 뒤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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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무들의 키 높이기 경쟁이 시작되었고, 완만하게 오르내리던 숲의 외곽선에는 드문드문 높다란 나무들이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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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나무들은 그들의 경쟁을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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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서도 큰 나무들의 뿌리 때문에 양분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곧 높이 자라는 것에 아무런 관심도 없던 나무들도 어쩔 수 없이 키를 키우고 뿌리를 늘리고 잎을 펼쳐야 했고, 그러자 그 옆 나무, 그 옆나무, 그리고 그 옆 나무까지......

경쟁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숲,
나는 여기서 어떤 나무일까?
지혜롭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합리화하다가
그 경쟁에서 어중간하게 솟다가
죽을 나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