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지음 / 토스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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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Grow Review

요요처럼 남편을 향해 다시 달려간다.

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산문집






나는 속으로 툴툴거리며 몸을 돌려 요요처럼 남편을 향해 다시 달려간다. 남편에게 가 닿으면 또 한동안 보조를 맞추며 걷지만 이내 또 달리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한다. 이제 말을 하지 않아도 남편은 눈짓으로 '어서 가' 라고 한다. 그렇게 그의 곁을 벗어났다가 도중에 잘 있는지 확인 후 '하는 수 없지'라며 돌아오고, 잠시 나란히 걷다가 또다시 그를 혼자 두고 나 혼자 스프링처럼 튕겨나가기를 반복한다. 내가 이렇게 오락가락 혼자 분주한 사이, 남편은 제 보폭으로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 결혼생활의 은유 같다.

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중턱에 앉아 보온병의 물을 따라 나누어 마시는 부부의 뒷모습, 그들의 시선을 따라 보이는 자연은 언제든 마주할 수 있는 보통날의 순간들이다. 이 모습은 내가 그리는 우리 부부의 미래다. 별다를 것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다.

있는 그대로 나를 안아줄 수 있는 동반자, 단순한 포옹이 아닌 내 생각, 가치관, 상상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사람. 내가 '홀' 하면 '짝' 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영감탱이' 하면 '여편네'라고 할 수 있는 사람. 편안한 차림으로 철퍼덕 누워 상대의 귓속을 탐험해 주는 사람. 그렇게 함께 사는 거다.

<평범한 결혼생활>을 찾아 읽은 이유는 오직 하나, 임경선 작가를 배우고 싶어서다. 그녀의 문체가 너무 좋다. 평범한 결혼생활 속에서 발견해낸 에피소드에 숨길 수 없는 털털함과 친근한 표현은 공감과 함께 웃음을 자아냈다. 예능을 보는 남편 옆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도대체 무슨 책을 읽길래 저런 반응인가 싶었을 거다. 어쩌면 본인이 보는 예능에 내가 리액션 한 거라 착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들을 몇 가지 말해보자면, '집'이라는 장소가 주는 괴로움 한 가지, 효용이나 가정경제 측면에서 좋은 생일선물의 형태, 유달리 미움을 더 받는다는 탈모, 새벽에 술 마신 남편을 데리러 가는 터프한 구원자 부분이었다. 그렇게 함께 하루를 숨 쉬는 것이 결혼생활이겠지.

오늘은 2012년 가을의 어느 날, 써보았던 메모를 공유해보며 리뷰를 마무리하려 한다.

복잡 미묘한 강물의 흐름에

나와 닮았다며 마음을 흘려본다.

진공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무작위로

하늘에 솜뭉치를 가볍게 띄운다.

바람의 세기는

가는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리는 정도

바람의 온도는

가디건의 온기에 편안함을 느끼는 정도

햇살은 이 모든 것을 통치하듯

이 순간의 공간, 시간의 색을 뽐낼 수 있게

조력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 색들을 넓혀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와 나란히 앉아 있다.

여러 시선들을 탐닉한다.

우리의 매듭은 무의식 그 어딘가에 깔아놓고

만지지 않아도 서로의 온기를 느낀다.

왜곡.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왜곡이라니.

지금 이 존재의 의미를

그 누가 알겠는가.

스쳐가는 사람일지라도

그를 알고 싶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지?

그 대답을 찾아 판단하려 하면

그 사실 조차도 왜곡의 일부가 된다.

한가지, 왜곡되지 않는 사실은

너와 내가 같은 공간에서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둘은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

비록 무언의, 무색의, 무지의 공간일지라도.

남편이 참 보고싶은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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