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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그라치아 마리아 델레다 지음, 정란기 옮김 / 본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명작이다.
이 얇고 거친 책장, 답답한 활자, 신경쓰지 않은 디자인의 작은 책을
열자마자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사랑과 증오, 신뢰와 배신 그 모든 감정들이 담겨있다.
번역된 책은 대부분 감정에 확 사로잡히기 어렵다.
번역투의 문장도 그렇고,
독자와 작가 사이의 문화적인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주제와 몇 명 안되는 등장 인물만으로
심장이 조여오는 듯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다니!
첫 장부터 독자를 끄는 이 '그라치아 델레다' 란 작가가
누구인가 검색해볼 정도이다.

이탈리아 라는 한국과 다른 문화권,
마을 주민들의 종교는 가톨릭이긴 한데,
미신과 인습이 적당히 섞여서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혼란한 배경과 혼란한 감정들.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산 과부 어머니,
그리고 배경없는 사람이 존경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자리인 사제....
우리 나라도 그렇지만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신분 상승(?) 의 기회로 신학을 공부 하는 얼빠진 이들이 많다.
폴도 본인이 원하는 자리가 무엇인지, 어떤 자리인지 알지도 못한 채,
가난하고 못배운 어머니의 손에 신학생으로 키워졌고
보란듯이 금의환향하여 왔다.
어머니는 그토록 꿈꾸던 사제관으로 입성하였는데,
아들은 사제의 자리를 후회한다.
어려서는
'사제가 되는 것을 인생의 사명으로 여겼고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이제는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치지 못한다.
아그네스에겐 돈이 있지만,
폴에겐 자신이 떠나면 부서질 어머니가 있다.
자신의 상황과는 반대로
어머니는 천박하고 아무 생각 없고
아들은 순수하게 사제가 되려고 하는 안티오쿠스도
이 소설에서 큰 부분을 담당한다.

죄라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겪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죄의 씨앗은 욕심이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욕심이 아들을 망친걸까.
그런 눈물나는 희생을 치루고 이루어낸 것은,
아들의 행복이 아니라
어머니 자신의 욕망이었다.
그리고 그 어머니 욕망으로 키운 아들이
자신의 욕망을 따르기 시작하면서 균열이 일어난다.
죄의 결국은 죽음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가증스러움을 느끼면
사형선고를 내리게 된다.
인간이 자살을 하는 이유가 이것.
아무튼,
어머니는 균열을 감당하지 못한다.
아들은 컸고, 그 아들의 욕망도 컸다.
이것은 어머니가 드라이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녀는 단지, 이 모든 상황의 무게를 감당한다.
결론은 스포가 되니 밝히지 않겠다.
꼭 읽어 보아야 할 책이라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