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됐다
임아영 지음 / 생각의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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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페미니즘 이야기 하면서
패밀리즘으로 변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난 겉멋만 들어서 앎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때였는데,
독신으로 살면 인생을 다 알기 어렵다는 결론에서 나온 것이었다.
아이를 낳고 기른 아줌마들에게선 뭔가 다른 기운이 뻗치는 듯.

세 아이를 수술로 낳고
이를 악물고 모유수유를 하고
낮인가 밤인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9년을 살다보니
이런 생각 들었다.
하나를 낳았을 땐 정신이 없어 보이는 것이 없었고,
둘을 낳았더니 어렴풋이 인생이 보이고,
셋을 낳으니 우주가 보인다.

(역시 겉멋..ㅡ.ㅡ)





이 작가의 글이 참 좋은 것은,
매우 현실적이고 현장감 있다는 것이다.

역시 기자라 그런가 글이 늘어지지 않고 결론이 깔끔히 드러난다.


페미니즘 책들, 육아서들은 읽으면 짜증이 많이 난다.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징징대는 글들은 많다.
아이는 낳지 않겠다 선언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일 뿐인데,
무슨 열사 마냥 진보의 상징 마냥 떠들어 대는 것을 보면
당신이 최소 삼 년 동안 누군가의 도움으로 기저귀를 갈고, 먹는 문제, 자는 문제, 노는 문제를 해결 받았다는 감사함이 있나 묻고 싶다.

일전에 해바라기씨앗과 계란을 던지며 낙태죄 폐지를 외치는 사진에
나는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깊은 충격을 받았다.
사람이잖아요...생명이잖아요...
가부장제를 떠받드는 낙태죄는 나도 반대한다.
그러나 뱃속 아가를 세포라고 무시하는 것도 부족해서 그런 집단 퍼포먼스를 하고는 어떻게 인간이 존엄하다고 말하는가.
본인도 걸어다니는 세포덩어리이니 그렇게 난도질로 죽어도 할 말 없겠네.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의 미래, 지구의 미래 로 바라보면서
사랑의 레이저를 쏜다면
온갖 범죄와 중독으로부터
아이들은 지금보다 좀 더 건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생각이 피부로 와 닿는 것은 역시 출산 후 이다.

배를 15cm 나 절개하고 수술실에서 나왔을 때도
아이가 예쁘다는 말에 그냥 안도했다.
아이를 낳기만 하면 모유가 철철 나오는 줄 알았는데,
살이 찢겨 나가고 피가 줄줄 흐르는데

그래도 하루 라도 더 먹여보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이런 것은 나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큰 아이는 이제 혼자 떡볶이 정도는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
엄마는 더 전투적(?)이 되는 기분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더 외면했던 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난 다 살았고 다 누려봤지만 너를 위해 엄마가 움직인다...하면서.
손 놓은 역사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환경 문제도 관심을 갖는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무의식적 편견들과 인습들을 타파하기 위해
내 남은 생은 아마도 계속 그렇게 흐를 것이다.




이 책이 '워킹맘 육아서'가 아니라 당당히 '건강한 페미니즘' 책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넘어서서 엄마로서의 경험으로
이 정신 나간 대한민국에 '살림'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절절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비교적 안정적이고 따듯한 부모님의 돌봄을 받고 자란 것, 시댁이나 남편도 그런 것은 부럽다.
그러나 받은 사랑의 깊이를 깨닫고, 베푸는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은 더욱 멋지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엄마 뱃속에서 사랑 받던 열 달의 경험은 같기 때문에 충분히 사랑을 줄 수 있다. 부부조차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섬기고 사랑 할 수는 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살벌한 직장에서 뭣 같은 대접을 받으면서 버티는 아버지나, 역시 가정을 위해 유체이탈하며 살림을 꾸린 어머니나
그들의 깊은 주름에 빛이 어려있는 것을 발견한 것은
내 경우는 아이를 낳고 기른 후 였다.

사회의 뒤틀린 구조가, 부조리가, 인간의 악함이 넘칠지라도
이 아이들이 빛과 소금으로 이 땅에 든든히 서가기를.



징징대다 끝나는 게 아니라

'살림'의 희망으로 끝난다.

(작가님 팔로우 고 싶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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