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시골 살래요! -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찾는 딸의 편지
ana 지음 / 이야기나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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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농자이다.
귀농 후 알게 된 오이 농사짓는 친구가 말했다.
"오이는 여자친구 같애.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
조금만 물을 잘못 주거나 약을 잘못 주면 망한다는 말이다.
이 말을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사람들은 시골에서 산다고 하면 아이들이 만날 흙 갖고 노는 줄 안다. 천지가 농약이라 맨발로도 못 다니게 하는데.
20년 전 쳤던 농약도 흙에서 채소에서 검출된다.
아이들 마음껏 비 맞히고 진흙탕에서 미꾸라지 잡고 개울에서 멱 감는 시골은 대한민국에 어디일까. 어디나 미세먼지 농도는 비슷하고 산성비를 머금은 구름이 떠돈다. 


귀농의 좋은 것은 나의 한계를 빨리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땡볕 아래 하우스 안에 들어가  일을 할 때 고상한 표현들 철학들 다 집어치우게 된다. 그래서 날것의 나를 만나게 된다.  뭔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살다가 포장지를 다 벗겨내니 그냥 '악'으로 존재하는 나. 
그리고 생의 근본적인, 먹을거리를 위해 흙 위에 엎드리면 자연히 겸손해진다.

'돈'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사상'때문에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귀농귀촌자들에게 시골이라는 곳은 또 다른 별이다.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곳 언어와 문화와 역사를 배워야 한다.

책에서는 젊은(?)이가 써서 그런가 신선한 표현들과 시각이 많다. 직접 찍은 사진들과 내추럴한 사투리가 재미를 더한다. 6주 간의 교육은, 연예인이 까르르깔깔 웃으며 실수를 연발해도 끝나면 두둑한 봉투 받는 '체험, 삶의현장!' 처럼 느껴진다.

또 시골의 삶을 낭만처럼만 묘사하지 않고 실질적인 면에서도 예를 들어주었다.  어찌보면 더 무례하고 모순적인 사람들이 도시보다 비율상 많을 수도 있다. 도시 부부가 맞벌이로 바쁘다고 학원으로 돌리는 것 못지 않게 농촌에서도 바쁜 탓에 아이들 얼굴은 명절에나 제대로 마주 보는 것 같다.



이 부분에서 귀촌 선배의 말이 좀 거슬린다.

정직하게 땀흘려 돈 벌겠다는데 고용이 '낙인'인가?


농촌에서 살면 해방같은가? 아닌데... 오히려 구속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식물들이 내 주인이다. 
주말따윈 잊은지 오래. 하루를 잘못 쉬면 시기를 놓쳐 열흘이 아니라 몇 달을 굶어야 할 지도 모른다. 농삿일에선 매순간이 골든타임이다. 며칠 여행은 꿈도 못 꾼다. 한 나절 잠깐 아이들과 근거리 외출이 그나마도 일 년에 한 두 번 허락된다.
직장상사도 아닌데 참견하는 동네 인간들(?)을 매일 마주해야 하며 아직 살아 퍼덕거리는 가부장의 문화에서, 여성으로서 견뎌야 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온 동네 할머니가 다 시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책임져야할 아이들까지 있다면, 그 고상한 사상은 흔적만 남을 가능성이 높다. 사상을 위해 유기농농법, 토종종자지킴이를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일부 귀농자들에게는 묘한 자존심이 있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행복한 척. 만족한 척. 역귀농은 마치 실패자인것처럼.


작가는 다행히(?) 있는 척, 아는 척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진실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시골에 산다는 것과 농사를 짓겠다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다. 판타지와 현실을 구분해서 썼다.

구례에 정착했다는 작가의 시골 생활 제 2권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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