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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 '골라 믿던 신앙'을 떠나 '진짜 하나님'께 다가서기
J. D. 그리어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잘 지어진 집을 본 기분이었다.
외양은 세련되고 수려하며 내부는 견고하고 구조적으로 탁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오래 거하기에 아주 편안하며 남에게 소개하여 팔기에도 적합한 집과 같은 책이다.
사실 이전엔 알지도 못했던 작가였는데 이 책을 통해 J.D. 그리어 목사님에게 완전히 반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왜 나는 하나님을 좀 더 강하게 전하지 못하는가, 신앙교육에 있어서 자꾸 타협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 답으로 '하나님을 우습게 여긴다' 는 사실을 깨닫고 매우 괴로웠다.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모태신앙으로서 그저 처음부터 계신 분이었고, 늘 어린이를 안고 웃으시는 예수님, 양떼를 이끌고 고단한 길을 담담하게 가는 그러한 분이었다. 나는 예수님을 그렇게 축소시켰고, 조물주를 만홀히 여겼다.
이런 자세는 혼자 신앙생활을 할 때는 잘 드러나지 않았으나, 누군가(아이들)를 가르쳐야 하는 위치에서 나는 내 그릇에 구멍이 났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데 이 구멍을 막을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을 어디서 잘라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책은 그런 내 신앙의 구멍을 막아주고 방황하는 나를 도닥거렸다.
종에게는 '왜요?' 라는 말을 할 권리가 없다. 그런데 나는 늘 이해가 되어야 순종하고, 부르심이 있어야 기도를 하고, 기쁨이 있어야 봉사를 하고, 만족이 있어야 감사를 했다. 하나님께 '나를 설득시키지 않으시면 난 손 끝하나 움직지 않을 거야' 라는 자세로 일관했다.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나에게, 작가는 정확히, 또 부드럽게 내 '골라 믿는 신앙'을 짚어주었다.
작가는 첫 시작도 믿을 수 없는, 무능한 하나님으로 오해하게 되는 세상을 이야기도 시작한다. 이 외에도 많은 예화들은 하나님이 이 땅의 자신의 자녀들에게 아무 관심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듯 하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선한 신'을 가공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나타나달라 요구한다. '주세요주세요주세요'를 끝없이 반복하는 기도가 그것이다. 상황이 견딜만하면 '아님 말고', 견디기 어려우면 '있긴 한거야?' 라는 말로 또 하나님을 모욕한다.
하나님의 역사가 태피스트리 짜기와 비슷하다는 작가의 말은 정말 적절하다.
그 뒷면을 볼 때에는 도통 어떤 그림인지 짐작할 수 조차 없다. 그러나 그 앞면을 보면 정교하며 균형잡힌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탄생한다. 우주 하나는 커녕 세포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인간이 감히 하나님께 '제가 볼 때는 이 구원 사업이 좀 비효율적이네요. 하나님 좀 생각이 없으신 것 같은데요?' 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잠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1:7) 이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장엄하심 앞에서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면 그분을 사랑하기는 커녕 그분을 알 수조차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에 관해 제대로 모르면 애초에 그분 앞에서 제대로 겸손해질 수 없다. 겸손은 믿음의 전제조건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그분의 답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그분에 관한 올바른 질문조차 던질 수 없다.
진정한 예배는 경외에서 싹트는 친밀함의 행위다. 솔로몬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한 경외는, 두려울 정도로 압도적인 하나님의 광대하심 앞에서 할 말을 잃고 숨죽인 채 서 있는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예배가 친밀함으로 발전할 수 있다. (p.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