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상생활의 혁명
라울 바네겜 지음, 주형일 옮김 / 이후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p.54
소외가 침해할 수 없는 재화처럼 행세하게 될 정도로 소외가 이처럼 고착된 적은 없었다. 긍정성으로 바뀐 고립에 대한 의식은 사적인 의식일 뿐이고 선량한 사람들이 거추장스럽고 소중한 자신들의 재산처럼 갖고 다니는 양도할 수 없는 개인주의의 부분일 뿐이다. 그것은 공동체의 환상 속에 정착하는 것과 고립의 지하실에 갇히는 것을 동시에 막는 일종의 쾌락-공포이다.
p.55
인정하자. 인간관계는 사회적 위계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중립적 관계들은 경멸의 가장 덜 피곤한 형태를 제공한다. 그것들은 일상적 접촉들의 투입구를 통해 불필요한 마찰 없이 지나는 것을 허용한다. ... 중립적 관계들의 무해성은 고립에 대항하는 쉼 없는 투쟁 속에 있는 공백 시간일 뿐이다. ... 중립적 관계들의 상냥함은 사상누각이다. 공허한 시간은 결코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p.57
"내가 내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해요. 이것은 내 주위의 사물들과의 투쟁입니다."
p.61
왕에서 매니저까지, 사제에서 전문가까지, 의식의 지도자에서 사회심리학자까지, 위계화된 권력의 가장 굳건한 기반을 구성하는 것은 항상 유용한 고통과 동의된 희생의 원칙이다. 더 나은 세상, 저 너머, 사회주의 사회, 또는 매혹적인 미래 등 내세운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인정된 고통은 항상 기독교적인 것이다. 오늘날 성직자 기생충을 대신하는 것은 붉게 물든 예수의 지지자들이다,
p.66
다른 사람들 안에서 내가 찾는 것은 항상 나이고 나의 성숙이고 나의 실현이다. 모두가 이것에 대해 인식하고 '각자 자신을 위해서'가 그것의 최종 결과에 도달해서 '모두가 각자를 위해서'에 이르게 되도록 하라. 한 사람의 자유는 모두의 자유가 될 것이다. 개인적인 요구들과 그것들의 변증법을 기반을로 세워지지 않은 공동체는 권력의 억압적 폭력을 강화시킬 수 있을 뿐이다. 내가 그 안에서 내 자신을 파악할 수 없는 타자는 사물일 뿐이며 이타주의가 나에게 권유하는 것은 사물들에 대한 사랑이다. 나의 고립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 나는 내 욕망에 따라 살고자 하는 나의 의지가 다른 사람들의 살고자 하는 의지 속에서 발견하는 평등 외에 다른 평등은 인정하지 않는다. 혁명적 ㅍ평등은 확고하게 개인적이며 집단적인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