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핀 붉은 장미
주드 데브루 지음, 이창식 옮김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3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이책을 중학교 1학년 때 읽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책'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수면제 대용으로 책을 선택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랬던 내가 하루 만에, 그것도 밤을 꼬박 새워서 당시에는 굉장히 두~껍다고 느꼈던 그 책을 몽땅 다 읽어 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때의 열정적(?)이던 밤이 생각나서 이 나이(22)에 다시 '가슴에 핀 붉은 장미'를 읽었다. 재차 읽어도 어쩜 그 맛은 변하지 않았을까? 이 소설은 대단히 끌리는 묘한 맛이 있는 것이다.

이책을 아주 비하해서 말하자면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과 순정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를 섞어 놓은 표절작 같다. 하지만 그 누가 감히 이렇게 말하지는 못 할 것이다. 책을 읽는 이유가 단순히 상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면 이 소설은 아주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 작가의 상세한 안내에 따라 우리는 금발의 재어드와 구릿빛 피부의 티어리를 머릿 속으로 천천히 자연스럽게 그려나가기만 하면 된다. 원래 유치하고 온갖 오감을 쥐어짜게하는 드라마가 인기가 많은 법이다.

이책에서는 순정만화의 단골 손님인 '남장 여인'이 등장한다. 어렸을 때 나는 '베르사유의 장미'를 보면서 여느 소녀들과 같이 꿈같은 사랑을 꿈꿨고(지금은 당연히 깨졌지만) 오스칼과 앙드레, 마리 앙뜨와네뜨와 페르젠의 사랑에 가슴아파 했다. 그러면서 '남장 여인인 오스칼과 앙뜨와네뜨 중 과연 누가 더 여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가. 바로 오스칼이다' 라며 스스로 묻고 답하기도 했었다. 유치할수록 속으로 별로 좋은 작품은 아니라고 느끼지만(그 유치함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함부로 그 드라마나 소설을 놓지는 못한다. '가슴에 핀 붉은 장미'에는 그렇게도 순진무구한 미소년같은 재어드와 이미 세상 이치를 모두 꿰뚫게 된 티어리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 내가 만약 페미니스트였다면 이런 설정에 분개했을 지도 모른다. 여자는 무지하고 그 무지한 여자를 남자가 휘어 감싸는 코드는 대단히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부장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떠랴. 이 매력적인 두 남녀를 대한다면 그 누구도 이런 작품 외적인 사설에는 관심을 두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단순히 원수집안 사이에서 피어난 불꽃같은 사랑이 아니다. 역시 원수 집안인 페러그린가와 하워드가 사이에서 태어난 알콩달콩, 티격태격 사랑이야기이다. 진짜 남자의 진한 향기를 물씬 풍기는 남자와 그런 남자를 몰라 주는 남장 여인이 있었는데 남자는 여자의 그 남장 속에 감춰진 여성적 매력을 단번에 느끼는 반면 남장여인은 그 남자 같지도 않은 사내는 절대 자기가 여자인 사실은 모를것이라고 생각한다. 천하에 대장부 티어리가 유독 그 여자도, 남자도 아닌 것 같은 계집에게 한 마디로 무시를 당하면서 이 소설은 시작하는 것이다. 그 결말은 누구나 상상하던 대로 남장여인도 그 남자의 남성적 매력에 빠지게 되어 결국 자기도 여자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의 작품성은 없다. 진정한 여성미는 무엇을 말하지는지 저자는 우리에게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남장 여인'만이 가질 수 있는 그 특유의 매력은, 어쩌면 이쁜 드레스를 입은 아주 아름다운 여인의 매력보다 더 깊을 수 있다. 아무 여자나 남장했다고 해서 다 매력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외적인 장치로 그 여성적 매력을 감춘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가진 여성적 매력은 너무도 깊기 때문에 굳이 티어리 같은 남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남자들은 눈치챌 수 있는 그런 매력! 그런 매력을 가진 재어드를 작가는 그만 아주 평범한 그냥 여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나는 참 안타까웠지만 이 소설에 별 네 개를 준 것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재미가 아주 쏠~쏠할뿐더러 책을 오래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 책 읽는 연습 시작 용으로 아주 제격일 것 같기 때문이다. 밤 새워 책을 한 번이라도 읽고 싶거나, 지루한 일상에서 뭔가 큰 즐거움을 얻고 싶다거나, 또는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성격에 모가 난 사람, 그 모두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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