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철수 지음 / 김영사 / 2004년 12월
평점 :
안철수. 그동안 내 편견속의 그는 우리나라의 보안 프로그램 중에서는 최고를 자청하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100위권 내에도 못 미치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장사치 이미지였다. 왠지 생긴 것부터가 사기꾼 기질이 물씬 풍기는 게 이 책을 집어든 순간부터가 고역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반부에서부터 시작되는 본인 회사에 대한 홍보성 글과 자기를 둘러싼 그동안의 루머에 대한 지나친 변명들이 나를 갑갑하게 만들었다. 하~ 역시나 잘못 골랐다.
하지만, 초반부를 넘기면서 시작된 그의 올바르다 못해 사회 표준 상으로까지 치켜세워주고 싶은 공동체 이념과 삶에 대한 열정이, 그 동안 나태하게 살아온 나의 20대 후반을 되돌아보게 했고 이제라도 이 커다란 충격을 받았음에 감사해 했다. 처음 이 책을 감싸왔던 저급 회사 홍보용 책자라는 인식이, 이 책을 덮는 순간 뭐 그리 대단할 건 아니지만, 책 전체가 왠지 선 해 보이고 안철수의 심장이 뛰는 형상 그대로로 전해졌다. 그의 말마따나 책은 지은이가 그토록 오래 고민해오고 노력해온 것의 산물이기에 내가 그 두꺼웠던 불신의 장벽을 걷어내고 진심으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우리나라 CEO가 모두 이 사람 같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만 해도 즐겁다. 무엇보다 사회를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 해라는 대목은, 온갖 비리와 편법을 이용해 권력을 휘어잡은 모든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일일이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성공을 위해 편법을 쓰지 말라, 타인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당하게 이용하지 말라,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때 남 탓을 말라, 그 책임의 절반은 나에게 있다. 요즘 기업하는 사람들과 우리 모두에게 이보다 좋은 충고가 또 있을까.
‘우리’보다는 ‘나’자신이 더 중요해져버린 사회. 개인주의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 속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직에 대한 구성원의 자세는 큰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다. 그 시작은 나부터였다. 학교를 들어오기 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또는 이렇게 학교 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행해왔던 이기적인 행동이 모두 들켜버려 부끄럽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상대를 배려하는 길의 첫걸음은 시간 지키기라는 것. 시간 지키기의 중요성은 알지만 그 얼마나 지키기 힘든 일이었는가를 돌이켜봤을 때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았음을 금방 알아챘다. 시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무시해왔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또한 상대방에 대해 지적하는 것 또한 그 상대방을 배려하는 하나의 행동 지침이라는 것도 크게 깨달은 부분이다. 단순히 상대방이 싫어하니까, 내가 조금만 더 양보하면 되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상대방의 단점을 고쳐주는 계기를 제시하지 못해 결국은 그가 사회로부터 고립 당하게 되는 과정에 까지 이르게 된다는 충격적인 결말이 될 수도 있을 거란 믿음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모든 사람이 자기 말만 하려고 하다. 무슨 말 못해 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귀는 닫고 무조건 자기 입부터 열고 전쟁터에 나온 사람처럼 맹렬하게 쏘아 치는데, 얼마나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이가 없었으면 저 정도일까 싶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 사람은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문구 중에 하나는, 현대 사회는 절대 혼자 노력해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점점 사회가 더 복잡해져가기 때문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합세해 공동 작업을 통해서만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 이기주의가 결국은 한 개인을 파탄에 이르게하고 말 것이라는 자명한 이치를 속 시원히 꿰뚫어주는 명쾌한 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다른 분야의 사람과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을 행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자신의 말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데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도 제대로 이해할 줄 아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얼마 전에 간장게장을 사라는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텔레마케터는 끊임없이 나에게 자기 회사 게장의 맛이 있으며 가격을 이번에 대폭 하락시켰고 따라서 이번이 품질 좋은 간장게장을 사 먹을 마지막 기회라는 것만 강조했다. 난 얼마 전에 그 회사에서 간장게장을 샀었고 재 구매를 요구하는 그 전화를 받고, 당시 먹고 난 후의 소감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야 그 회사가 제품을 잘 보완해서 앞으로 더 나은 상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란 나름의 배려였다. 하지만 주구장창 자기 현재 상품의 장만을 고막이 터지게 외쳐대는 텔레마케터에 질려서 그만 알겠지만 대신 사 먹지는 않겠다는 대답만 하고 끊어버렸다. 기업하는 사람이, 그것도 식품 회사 홍보∙영업팀의 실력은 가히 최하급 수준이니 이 회사의 미래는 안 봐도 뻔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현재를 열심히 살라는 것이다. 언뜻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너무도 간단한 말이지만 이렇게 또 와 닿는 말도 없었다. 장이모라는 세계적인 감독이 앞으로 자신이 30년을 더 산다면, 그 중에 3분의 1은 잠을 잘 것이고, 또 이동하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등을 제외하면 앞으로 자신이 일할 수 있는 날은 3000일 밖에 되지 않는 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난 앞으로60여년을 더 산다면, 6000여 일 밖에 일하는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 과제를 하고, 밥을 먹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놀고 하던 나의 하루들이 그렇게 잔인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내 심장이 쿵쾅거리며 미칠듯이 ‘열심히 열심히!’를 외쳐대는 것 같았다.
정보화 시대의 도래에 따라 나의 경쟁자는 이제 내 옆의 짝꿍도 아니며 전 세계인일 것이다. 그들에 비해 난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짜릿한 평가를 해 볼 순간이 왔다. 지금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일이나 더 나은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일이 힘들다고 포기해버린다면, 그것도 한창 젊을 때인 2,30 대에 포기를 해버린다면 이 포기는 평생 자신이 이것밖에는 더 할 수 없다는 한계를 설정해버린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나는 오늘을 정말, 정말 열심히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