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의 마지막 키스 역사 속으로 떠나는 비엔나 여행 2
프레더릭 모턴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이야기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권하고 싶지 않다..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역사적 배경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읽기에 많이 힘들었다.
대화체가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제삼자의 시선으로 설명문처럼 쓰여진 단조로운 문체...
역사적인 배경, 사회 생활상, 예술적인 면들을 다체로운 방향에서 접근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되었던 루돌프 황태자는 이상은 높되 실권은 없는 꼭두각시 황태자다.
앞날에 대해 많은 것을 내다 보았지만 현실화 시키지는 못한다.
장식과도 같은 존재...
유일한 저항 수단은 마이얼링 별장에서 익명으로 신문사에 칼럼을 보내는 정도???
 
그외의 모든 면에서 유약한 모습을 보인다..
참고 참고 또 참는거.....

메리베체라와의 사랑이야기를 기대를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저 현실 도피용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던것 같다.
아주 잠시 언급이 되었을뿐..

메리는 신분상승을 꿈꾸는 집안출신답게 화려하고 눈이 높았고,
당시의 최고의 인물로 꼽힌다는 면에서 황태자를 선택했을 뿐이라는게 내 생각..
사랑때문에 동반자살에 동의했다라는 면에서는 선뜻 공감을 할 수가 없다..

아주 잠시잠시 그런 사람이 있었다라는 설명외에는
둘이서 어떻게 서로의 사랑을 가꾸어 나갔느냐에 대한 설명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사랑이야기가 아닌,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무기력한 황태자의 절망은 느낄 수가 있었다.
더불어서 1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오스트리아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고,
아돌프 히틀러가 태어나기 직전의 분위기도 알 수 있었고......
황태자의 죽음을 은폐하기 위한 시도때문에 왕가와 교회가 서로 반목하기 시작했다는 언질도 조금 나온다
 
2편 석양녁의 왈츠를 마저 읽어야 내용의 마무리를 할 수 있을것이다.
진정한 전쟁의 상황을 알 수 있을거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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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1월 30일, 비엔나 숲에 있는 마이얼링 별장. 잘생기고 매너좋은 황태자가 침실에서 리볼버 권총으로 10대 소녀를 쏴 죽이고 자신도 뒤따라 죽는다. 마이얼링에서 울린 두 발의 종소리는 오늘날까지 메아리친다.

프란츠 요제프는 1830년에 태어나 1848년에 황제에 오른 뒤 1916년에 죽기까지 무려 68년을 통치했다. 그러나 그가 죽자 20세기초에 일어난 민족주의 운동과 함께 제국은 무너지기 시작한달. 190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를 병합하자, 세르비아에서는 오스트리아가 남부 슬라브 국가들을 지배하려 한다는 우려 때문에 오스트리아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다. 결국 1914년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페르디난트 대공부부를 암살한다. 이 암살을 계기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했고, 이를 계기로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에 휩싸인다. p27.

루돌프가 계속 살아 황제의 자리에 올랐더라면... 제국 국회가 최소한 그의 소리를 경청했더라면.. 보다 나은 세상이 찾아왔을건데! 그는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 사이의 동맹 관계를 청산하고 프랑스나 영국과 손을 잡았을 지도 모른다. 오스트리아는 폭력과 피 흘리기 좋아하는 독일 황제와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민주주의와 산업화, 합리적 이성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루돌프는 합스부르크가의 누구보다 능숙하게 오스트리아 제국내의 분쟁을 조정하고, 궁극적으로는 발칸 반도의 민족주의자들과의 긴장 관계를 햇고해, 온 유럽을 제1차 세계대전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했던 사라예보의 총성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게 '만약'이라는 가정이 뒤따른다. 그러나 가정은 항상 반대의 측면이 있다.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고, 그가 그렇게 혐오했던 화려한 꼭두각시 역활을 계속했더라면? 프란츠 요제프는 1916년이 되어서야 죽었다. 그 아들이 아버지가 짓누르는 거대한 무게를 어떻게 견대낼 수 있었을까?  손발이 다 묶인채 후계자로 27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그 과중한 압박감을 말이다.

더 중요한 가정이 있다. 루돌프는 그가 떠 받들었던 신조가 불러올 예상치 못한 재앙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의 신조였던 자유주의는 아마 그가 죽기 전쯤부터 잘못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 지성인들은 평등과 풍요로 가득한 위대한 19세기를 꿈꾸었다. 생산성이 급격히 늘어 물질적 풍요가 찾아올 것이다. 민주주의는 완전한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다. 과학은 새로운 기술과 위대한 지식을 창조할 것이다. 그것은 장밋빛 미래였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자신의 뿌리를 잃어버린 새로운 빈곤층과 역시 뿌리가 없는 거부들이 등장했다. 물질과 정신의 새로운 욕망도 생겨났다. 새로운 시기, 새로운 의심, 그리고 전혀 새로운 극심한 혼란도.

그렇게 믿었던 자유주의가 결국 제국을 무너뜨린 '진보'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당혹스럽다. 대부분의 자유주의 신봉자들은 자유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은 오직 외부의 적이지 결코 내부의 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자유주의 멋쟁이처럼 루돌프도 최신도구를 이용해 자유주의를 지키고 싶어했다. 모든 것을 개념속에 집어넣는 기술,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중앙집권화, 절대 자유의 이상속에서 살아 숨쉬는 절대 야망등이 그 도구였다.

그러나 바로 그 도구가 인간으로서 살아갈 보람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그 도구때문에 자신들의 뿌리였던 안식처, 섬세함, 개인의 필요에 하나하나씩 응답해주던 자상함을 잃어버렸다.

p31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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