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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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읽고 난 뒤 한 동안 그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일본 추리소설이라곤 [야수는 죽어야 한다]와 [독 원숭이] 밖에 읽지 못했던 전 [인간의 증명]을 읽고 아! 이런 추리 소설도 있구나 했었고 -‘혁진’님께 늘 감사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호숫가 살인사건]을 읽고는 “’히가시노 게이고’ 이 사람 굉장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일본 소설에 맛을 들이면서 또 다른 작가가 없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중에 ‘미야베 미유키’를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훔친 여자]가 많은 분들 입에 회자되고 있기에 구하려고 해보았지만 수포로 돌아갔고 당시 신간으로 나와있던 [이코-안개의 성]은 장르가 달라 나중을 기약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유]가 출간 되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서점으로 달려갔지만 막상 책을 집어들고 보니 약간 망설여졌습니다.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저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워 보이는 타이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로 대단한 작가인지’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을 누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결손 가정’ 출신(?)입니다. 군대에 있을땐 항상 ‘관심 사병’이었고, 이혼한 부모의 자식을 내켜하지 않던 여자 친구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쳐 결혼에 실패한 경험도 있습니다. 그것이 [이유]가 저에게 다른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남다른 작품인 ‘이유’이고 이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아마도 남은 평생 제 마음 한 구석에서 결코 떠나지 않을것 같습니다. 그런점에서 [이유]는 읽는 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무게감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화차]가 재출간 되었습니다. 그 사이 [용은 잠들다]를 읽었고 생일 선물로 받은 도서상품권으로 부담없이(?) 지른 [모방범]은 책의 분량에 질려 차일피일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전 감개무량하고도 무한한 기대감으로 [화차]의 첫장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뒤에 [화차]가 [이유]에서 한 가족을 중심으로 수없이 얽혀있던 인간사 중 하나를 클로즈 업 시켜 그린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유]가 [화차]보다 훨씬 이후에 나왔으니 거꾸로 이야기하면 작가가 자신이 알고 있던 혹은 그 동안 수집해왔던 [화차]와 같은 이야기를 [이유]라는 작품을 통해 집대성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차] 역시 [이유]와 마찬가지로 읽는 동안 줄곧 마음 한켠이 무거웠습니다. ‘세키네 쇼코’ 선배 정도 될려면 한참 멀었지만 저 역시 4년동안 일한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을 몽땅 카드 연체대금에 꼴아박은 경험이 있고 그 뒤로도 계속 정신을 못차려 텅빈 주유소에서 유니폼을 입고 서른살이 되는 아침을 맞이할 때까지도 전, 통장에 모아둔 돈 한푼이 없이 1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어머니에게 쥐어주는게 전부인 빈털털이 였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운이 좋아 ‘이쿠미’(까지는 안되지만….)같은 와이프를 만나 제 나름 열심히 벌어서 지금은 그럭저럭 남보기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사는 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화차]는 그런 제 젊은 시절의 아픈 곳을 들추어 콕콕 찌릅니다. 때론 너무 아프기도 하고 또 우울해지는 저를 볼 때마다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미야베 미유키’ 여사(이제 겨우 3작품 읽었을 뿐인데 이런 호칭을 붙이기가 웬지 망설여집니다.) 의 글은 손에 침을 묻혀 다음 장을 넘기게 하고 결국 중간에 다른 길로 새는 일 없이 끝을 보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역시 세편밖에 읽지 못했지만…)이 빨리 읽히는 것과는 또다른 느낌입니다.

어제 저녁, 아는 분들과의 저녁식사 모임을 끝내고 돌아오는 택시안에서 [모방범]은 제 인생이 지금보다는 좀더 느슨해 졌을 때 읽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임을 가진 것이 [화차]를 다 읽고난 바로 직후 였는데 시켜놓은 해물찜을 먹는 동안 줄곧 ‘세키네 쇼코’와 ‘신조 교코’ 가족의 삶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오고가는 대화에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아직 책을 보지 않으셨다면 이 부분은 읽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절제한 카드 사용으로 파산한 ‘세키노 쇼코’의 이야기 부분은 어쩌면 조금은 뒤늦은 감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 집 마련을 위해 무리한 대출을 하고 그 이자를 메우기 위해 사채까지 끌어다 써 패가망신한 ‘신조 교코’의 가족사는 부동산 만이 살길인 것처럼 여기는 우리 국민들에게 여전히 무시무시한 교훈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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