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을 서점에서 본 게 약 3~4달 전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크라 임 픽션 진열대를 쓰윽 훑고 지나가는데 이 책의 등에 박힌 ‘KORYO’라 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얼른 빼서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북한 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었습니다. 실은 한참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 그날 은 그냥 돌아섰습니다. 30달러에 이르는 책값도 무시 못할 원인이었지 만 ‘외국인의 눈으로 들여다 본 북한 내부의 묘사가 얼마나 사실에 가까 울까?’ 하는 책의 리얼리티에 관한 못미더움도 거기엔 있었기 때문입니 다.
그리고는 이후로 서점에 들를 때마다 한번씩은 이 책을 들춰보게 되었 습니다. 그러면서 언젠가부터 제 마음 한 켠에 이런 자성이 싹트더군요. ‘그렇다면 나는 실제로 북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그 지식의 정도 가 과연, 휴전선 너머 세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누군가의 펜을 통해 나 름의 사전 조사와 준비기간을 거쳐 세상 밖으로 나왔을 수도 있는 이 책 을 읽어보지도 않고 무시할 만큼 되나?’… 결국 어느 날 서점을 나오는 제 한 손엔 이 책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A crackling good mystery novel, filled with unusual characters involved in a complex plot that keeps you guessing to the end.” –The Washington Post
책의 커버에 실린 추천사입니다. 위에 굵은 표시로 이루어진 문장은 제 가 이 표현에 대한 ‘동의’의 표시로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럼 일반 굵기로 쓰여진 앞부분은 부정한다는 거야?’ 라고 물으시면 고개를 반쯤 끄덕여 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왜?냐고 되물으실 것에 대해 준비한 제 대답 은 이렇습니다. ‘너무 비범한 캐릭터에 너무 복잡한 플롯, 그리고 그것이 계속 끝을 궁금하게 만드는건 사실이지만 왼지 가도가도 스무고개 수수 께끼의 두어 번째 질문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이 작품엔 적지 않은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 캐릭터들 중 핵심 인물인 ‘강’과 직속 상관인 ‘박’을 빼놓고는 줄거리의 흐름과 같이 하고 못하고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나 소설이 어차피 현 실세계를 재 구성한 드라마인 만큼 극적 효과를 위해 사건이나 캐릭터 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어느 한 지점을 향해 –‘반전’이 상당한 비중을 차 지하고 있는 추리소설 장르이니 만큼 더더욱- 나아갈 필요가 있는데 그 냥 소개나 나열에 그치고 만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하면 좋을까요? 뭐 그런 것들이 좀 매끄럽지 못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한가지 사실이 더 책 읽기에 훼방을 놓은 것이 있었 는데, 바로 북한 사람들에 관해 평소 가지고 있던 이미지에 대한 ‘선입 견’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선입견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 니다. 왜냐하면 제가 직접 그들과 만나 대화를 나눠 보거나 한 적이 없 기 때문입니다. 가끔 TV 뉴스를 통해 원색의 저고리를 입은 여성이 무 디어 보이는 마이크를 앞에 두고 쩌렁쩌렁하게 당 소식을 전하고 있는 모습이나, 예전 ‘남북의 창’이란 TV프로그램을 통해 보곤 했던 북한 영 화 한 토막, 그리고 한때 응원단으로 남한을 찾았던 예술단원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 그 정도가 전부였으니 말이죠. 어쩌면 부끄럽게도 아직도 전 오래 전 마치 유행어처럼 희화화 되었던 “‘묘향산’에 수영하러 왔습 니다.”라고 한 북한 여성의 말이 여전히 사실일 거라고 믿고 있는 건지 도 모르겠습니다.
도청되고 있을 것이 분명한 전화 교환소의 교환원이 주인공 ‘오’와 농담 을 주고 받는 모습, 역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먹잇감을 노리는 포주, 원하 면 주위 어디서든 성경책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하는 떡 파는 행상 할머니, 무료한 밤을 포르노 비디오와 함께 지새는 국경 근처 모텔 직원 그리고 감히 ‘겁도 없이’ 주석배지를 빼놓고 다니는 주인공 형사 ‘오’. 이 모든 것이 생경했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서로는 이 해하기 힘든, 어쩌면 매우 극적일 수도 있는 장면에서의 지나치게 인색 한 혹은 메마른 묘사를 포함해서요…
만족 못했던 부분만을 쓰기 했지만 지나치게 복잡한 플롯을 제외한다면 충분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특히 주인공 ‘오’가 당 간부인 ‘강’과 주체 사상 탑 꼭대기에서 만나고 돌아온 날 상관인 ‘박’에 의해 ‘강계’로 내려 가라는 말을 듣고 내려갈 때부터 ‘고려 호텔’에 얼굴이 부수어진 시체가 발견 되었다며 수사가 필요하니 다시 올라오란 연락을 받고 평양으로 오기까지의 전반부 전개는 흡사 히치콕의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 라’를 연상시킵니다. ‘평양’에서 ‘강계’, 거기에서 ‘만포’ 그리고 다시 ‘평 양’으로… ‘오’의 머릿속엔 왜?라는 질문뿐 대답이 없습니다.
Ps: 희극과 비극은 흔히 종이 한 장 차이라고들 합니다. 전 다음 구절을 수 차례 연달아 읽었습니다. 웃기기도 또 너무 슬프기도 했기 때문입니 다.
‘The train to Pyongyang was late. Not like some place, where a late train means twenty minutes, even an hour on a bad day. This train didn’t come that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