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 미래그림책 12
노엘라 영 그림, 릴리스 노만 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어릴 때 부모님이 다 일을 하셔서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어요. 그런데 할머니 때문에 부끄러울 때가 많았어요. 친구들을 데리고 오면 늘 멀건 라면국을 끓여 주셨죠. 나는 원래 라면이 그런줄 알았어요. 친구집에 가 보고서야 할머니의 라면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친구들이 우리집에 오는게 싫었어요. 이상한 라면을 해주시니까요.

그리고 또 부끄러운게 하나 있어요. 우리 할머니는 젊을때 부터 허리가 구부러졌어요. 머리는 하얗고 얼굴을 쭈글쭈글하고 허리는 굽어서 할머니가 대문밖에 나오면 나는 얼른 숨곤했죠. 꼬부랑 할머니라고 친구들이 놀리니까요. 왜 할머니는 굽은 허리와 흰 머리와 말라서 뼈만 앙상한 몸을 겨우 지탱하시면서 학교에 찾아오셨는지... 운동회때 엄마대신 오셨을 땐 정말 너무 부끄러웠어요. 나의 할머니라고 밝히지 않았죠.

생각해 보니 또 짜증났던게 있어요. 할머니는 이가 몇개 없으셨어요. 그래서 매일 국수고 라면이고 자장면이고 제가 잘라드려야 했어요. 할머니가 하는 음식은 늘 물컹물컹했죠. 할머니가 음식을 드시는 모습은 그리 좋지 않았어요. 우물우물 음식을 씹으실땐 어쩔때 보기싫기도 했어요.

늘 할머니 대신 엄마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죠. 그게 어린시절 나의 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나를 먹이고 입히고 씻겨준 할머니가 싫기도 했어요. 할머니만 없으면 엄마가 어쩔수 없이 내 곁에 있어줄 텐데....

그래요 그런 할머니가 지금 생각나요. 너무 꼬부라져서 서서 걷지도 못하고 옆으로 엉금엉금 기면서 움직이시는 할머니를 우리집에서 더이상 모시지 못해서 고모댁으로 가셨을 때가 나의 대학1학년때였죠. 나는 할머니가 없는 공간이 이상스레 허전하기도 했지만 내 방을 혼자 쓸 수도 있었고, 놀러가도 할머니 때문에 당일 돌아오지 않아도 돼서 너무 자유로웠죠. 그 때부터 할머니를 잘 뵐 수 없었어요. 고모댁이 멀어서는 아니지만 대학생활이 바빠서 연애하기 바빠서 결혼준비로 바빠서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90이 넘는 연세를 뒤로하고 천국으로 가겼죠. 나의 할머니는 죽는 것과 거리가 먼 줄 알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다 저 세상으로 가도 내 할머니는 영원히 계실줄 알았어요. 그래서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나쁜 할매]

할매는 나쁘다.
내한테 말도 안하고 가면 어떡해

할매는 진짜 나쁘다.
그라만 안돼지.

꼬부라진 할매 허리 보기싫어서
엉금엉금 다니는게 보기싫어서
이가 다 빠져 나를 보고 웃는모습이 싫어서

할매가 보기싫어서
자주 찾지도 못했는데

할매는 나쁘다.
그러면 안돼지..

나보다 더 오래 이 세상을 살았으면
언제 저세상 갈지 알면서

왜그렇게 나를 부르지도 않고
마지막 얼굴 보여주지도 않고
갔어?

할매 꼬부라져도
몽창 빠진 이로 밥 먹어도
허연 머리컬 기름이 덕지덕지해도

할매 쪽진머리
비녀 다시 꼽아줄께
할매 다시 돌아온나.

20년을 매일같이
굽은 허리 아장아장 날델고 다닐때
너무 어린 손녀투정
다 받아준

할매는 나쁘다.
할매는 나쁘다.

할매가 너무 미워서
염할때도 느즈막히 도착했는데

할매 미안해

할매야

(이 책은 저의 할머니를 생각나게 만는 그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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