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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컬 오렌지 4
윤지운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다른 만화책 뒤에, 제법 흥미로운 문구로 광고가 들어있길래 읽게 되었다.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여자 주인공'이라는 등의 말을 내세운, 제법 도발적인 광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가의 전작 '허쉬'에 대한 나의 감상은 둘째치고, 그 책이 흔히 말하는 대박임이 분명했기에, 어느 정도는 허무한 내용과 시덥잖은 재미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나름의 믿음이 있었음을 부인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비율은 다르지만, 등장 인물은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넷으로 줄여 볼 수 있다. 내게 흥미를 불러 일으켰던 바로 그 광고의 주인공이며 이 만화의 주인공인 혜민, 그리고 그녀와 함께 주인공의 타이틀을 가진 마하. 이야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신비, 그리고 이들을 관조하는 듯 하면서도 이해하는 소류. 이들의 관계는 끈끈하면서도 위태롭다. 끈끈함이란, 혜민과 신비사이를 지칭하는 친척이란 이름, 혜민과 마하 사이를 이어주는 연인이란 이름, 신비와 소류 사이에 공존하는 우정이란 이름과 혜민과 소류 사이에 부유하는 연민이란 이름을 지칭한다. 위태롭다는 것은, 어쩌면 이 끈끈함을 단칼에 쳐낼 수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혜민과 신비의 사이는 신비의 어머니가 재혼하여 성립된 관계로, 역시나 어머니 나름의 걸출한 '결혼과 이혼 경력'에 비춰 볼 때 언제든 '별거 아닌 관계'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혜민과 마하는 사귀는 사이지만, 이들은 조금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위태로운 연인'의 표본처럼도 보인다. 신비와 소류사이는, 어쩌면 가장 불안정한 관계일 것이다. 신비는 우정으로 포장된 경계선을 너무나 뚜렷하게 긋고는 감히 넘지 못하게 하지만, 소류는 우정으로 포장된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혜민과 소류사이에 공존하는 '연민'이라 할만한 감정이, 그나마 가장 안전한 관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뒤틀린 캐릭터와 뒤틀린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는 틀의 비틀어짐에서 기인한다. 그들이 서로를 보는 관점은 사랑스러움이 묻어나지만, 그 관점은 조금씩 빗나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늘어놓은 말을 보면, 이야기가 어둡고 무겁고, 그리고 어려울 듯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야기는 조금의 긴장과, 높은 함유량의 상쾌함과 그리고 순도 높은 재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뒤틀림은 긴장을 부르고, 그들이 내뱉는 말들은 상쾌함을 올린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재미를 부르는 것이다. 결국, 이런 특징을 함축하는 말 '시니컬 오렌지'가 제목이 되었음은 당연할는지도 모른다.
전작 허쉬에 비해 이야기는 수준을 올렸고, 구조는 좀 더 튼튼해 졌다. 시니컬한 이 오렌지들의 시원하고 새콤한 과즙은, 기대 이상의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