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19
김수용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처음, 힙합을 읽었던 것은 중학교 때 였다. 지금의 내가 아무곳, 아무런 때에도 술을 마시고 떳떳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생각하면 제법 오래되었다는 느낌도 든다. 우리나라에 이런 만화가 나왔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당시는,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힙합 그룹들이 있었고 너도나도 '힙합'이라는 말을 쓰지만 제대로 된 이해가 없던 때였다. 힙합이란 말을, 춤의 한 장르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 상황이 뻔했다. 그래서, b - boy란 말도 무척이나 생소했다. 그런 때에, 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화가 등장한 것이다.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림으로만 보아도 화려한 기술이 재미있었고, 주먹으로 싸우는 싸움은 작가들만큼이나 패턴에 대해 도가 튼 독자들에게는 쇼다운 이라는 것도 신선했다.

그런데 역시, 기대라는 것은 그 크기가 클수록 결국은 스스로가 지쳐 떨어지게 되는 경우가 큰 것 같다. '힙합'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라든지, 작품 자체에 대한 열정 같은 것은 대충 이해가 된다. 뭐, 내가 이해를 한다고 해도 작품을 자식에 비유하면 '어버이'가 되는 작가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화는 '스토리'와 '그림'의 결합체라고 생각한다. 만화를 이루는 두 축이 되는 이것 중, 한쪽이라도 삐그덕 거리면 그 만화는 매력을 잃게 된다. 요즘 힙합을 보노라면, '처음에도 이런 스토리에 이런 진행이었던가'하는 생각이 든다. 학원물에서, 날마다 반복되는 싸움을 해도 그것을 독자들이 보는 이유는 '기적의 한방'이 있기 때문이다. 다 죽어가던 주인공이라도, 마지막에 기적처럼 한방을 날려서 이기는, 그런 우연이 종종 발생하는데 그것이 그 만화를 보는 나름의 맛이다.

그렇지만, 힙합처럼 '기적'보다는 '실력'을 독자에게 보여줘야 하는 만화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학원물은 '모두가 아는'패턴으로 가도 상관없지만, 이런 경우에는 작가가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며 게다가 전문적이라는 느낌의 무엇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도 사람이고, 권수가 20여권에 가까워지면서 이런 부분들이 많이 약해졌다.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모으기 시작한 만화가, 내 기대 이하를 달릴 때는 왠지 섭섭함이 느껴진다. 기대가 컸던 이유도 있겠지만, 만화가 길어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 어떤 '매너리즘'이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 보았을 때의 신섬함에 왠지 조금 갈증을 느끼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